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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들여다보는 재미/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들여다보는 재미/김재원 KBS 아나운서

입력 2015-05-06 17:50
업데이트 2015-05-0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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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
드라마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내 주변으로 국한된다. 나는 가난했던 1960년대에 태어나서 격동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방송사에서 월급 받는 아나운서로, 6학년 때 짝이랑 결혼해 아들 하나 키우는 가장의 삶을 살아 내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 역시 그 경계를 크게 못 벗어나고, 듣는 이야기도 아무리 건너 들은들 울타리 안을 맴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드라마가 있어서 다른 삶을 들여다본다. 다른 시대, 다른 공간, 다른 계층의 삶을 간접 체험한다. 드라마를 보는 일은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얼마 전 드라마 ‘펀치’를 통해서 검찰 조직을 엿보았다. 오직 그들만의 성공을 위한 권모와 술수가 판치고, 편법과 거짓도 끼어들 여지는 충분했다. 검사의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드라마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드라마는 전부 사실일 수 없고, 전부 거짓일 수도 없지만 그 드라마를 본 다음부터는 검찰 관련 기사가 나오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뒷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누가 날린 펀치일까. 드라마의 부작용이다.

‘전설의 마녀’는 교도소 출신 여성들의 삶과 재벌가의 실상을 보여 줬다. 현실을 외면한 미화일 수도, 과장일 수도 있지만 열심히 살려는 재소자 출신 여성들과 후안무치 재벌 가문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횡령과 배임은 기본이고 덮어씌우기와 깔봄과 무시는 덤이다. 대기업에서 영세 제과점의 인기 제품을 복사해 더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상황은 드라마가 끝난 이후 현실에서 재현되는 바람에 드라마가 현실을 바라보는 창임을 증명해 주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상류층 집안 곳곳을 관찰자 시선에서 구경하게 해 준다. 정말 저럴까 싶을 정도로 특이한 갑의 심리와 삶을 보여 준다. 특히 상류층 식구들이 밥 먹는 장면을 식탁이 있는 방 바깥에서 집안일을 돕는 이른바 ‘을’들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드라마를 연극화해 ‘을’들을 관객의 자리에 앉힘으로써 ‘갑’을 비웃게 만드는 역전의 묘미도 맛보게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즉 허구다. 현실이라는 도화지에 허구라는 크레파스로 색칠하고 재미라는 물감을 덧입힌다. 아마 드라마에서 다루는 직업군 당사자들은 묘한 불쾌감을 드러낼 것이다. 아나운서를 부정적 이미지의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에서 느껴 봤던 기분이다. 드라마 속 연기자들은 악역이라도 그 역할에 빠져들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드라마 속 역할은 선이냐 악이냐에 따라 존중을 받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허구임에도 말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서로 환히 들여다보는 세상이 됐다. 아직도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증거가 나와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실 정치조차 시시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업무의 우선순위도 모르고, 부도덕의 유치한 합리화와 여전히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줄 알고 있는 그들의 우매는 더이상 구경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아마 그들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반복되는 거짓말로 이미 리플리 증후군에 빠져 있는 것일까. 연기력 없는 배우의 발연기가 역겨운 것처럼 함량 미달 정치인의 인터뷰도 견디기 힘들다. 이제 기댈 곳은 녹봉마저도 백성을 위해 쓰며, 불철주야 사람 살피기에 전념하는 숨은 정치인들이 어딘가에는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적어도 드라마는, 끝내는 악인이 망한다. 정치가 드라마보다 못한 이유다.
2015-05-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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