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아오 - 메이웨더 재대결 논란

“재시합은 없어.” 15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자 피투성이가 된 도전자 록키는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를 껴안고 헐떡이면서 말했다. “나도 싫어.”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챔피언 역시 간신히 이렇게 답했다.

1976년 삼류 복서의 도전을 그린 영화 ‘록키’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록키는 자기보다 크고 강한 상대를 맞아 서 있을 힘도 남기지 않고 싸웠다. 복싱은 그런 스포츠로 인식됐다.

지난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끝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키아오(37·필리핀)의 웰터급(66.7㎏) 통합 타이틀전을 보며 문득 영화 록키를 떠올려 보았다. 둘의 경기는 ‘세기의 대결’이라는 그럴 듯한 표현으로 포장돼 복싱 팬들에게 선보였지만 감동은 전무했다. 라스베이거스 시민 2명은 6일 파키아오를 상대로 500만 달러(54억원)짜리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서 이들은 파키아오 측이 네바다주 체육위원회에 오른쪽 어깨 회전근 손상을 통보하지 않고 경기를 벌여 최소 2500달러(270만원) 입장권을 구입하거나 99.95달러(11만원)의 유료방송을 시청한 복싱 팬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대전료만 2억5000만 달러(약 2700억원)에 이르는 두 사람의 경기에서 팬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영화 록키의 감동과 비슷한 무언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3분 12라운드가 끝났을 때 말끔한 얼굴로 웃으며 포옹했다. 지친 기색도, 얼굴에 상처 하나 없었고, 웃으며 소감을 전했다.

복싱 팬들의 상심이 채 가시지도 전에 재경기설도 나온다.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은 이날 “메이웨더가 ‘파키아오가 건강한 몸 상태가 되면 다시 맞붙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자사의 기자에게 보냈다”고 보도했다. 회전근 수술을 받을 예정인 파키아오가 회복에 최소 9개월 걸리고, 네바다주 체육위원회가 파키아오에게 벌금 또는 출전 징계를 내릴 예정이어서 물리적으로 재대결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된다면 아마 어떤 방식으로든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그게 프로 스포츠계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경기를 할 거라면 제대로 하기를 복싱 담당 기자이기 전에 한 명의 팬으로서 바란다. 재경기는 싫다던 록키와 아폴로도 속편에서 멋지게 다시 맞붙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