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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눈] ‘무상’ 공중화장실/강국진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무상’ 공중화장실/강국진 정책뉴스부 기자

강국진 기자
강국진 기자
입력 2015-04-19 18:00
업데이트 2015-04-20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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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진 정책뉴스부 기자
강국진 정책뉴스부 기자
4년 전 취재를 위해 영국 런던을 방문했을 때 ‘런던에서 가장 붐빈다’는 워털루역을 찾은 적이 있다.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 등장하는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지만 정작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 넓은 기차역 한가운데 자리잡은 공중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입구에는 30페니, 한국 돈으로 500원가량을 내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한편에는 동전 교환기도 있었다. 투덜대며 화장실에 들어섰다.

지하철 개찰구처럼 돼 있는 곳에 동전을 넣으려고 보니 ‘고장 났다’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결국 돈을 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쓴웃음만 났다. 가뜩이나 맛없는 음식과 비싼 공공요금, 끔찍하게 느리고 비싼 인터넷환경에 지쳐 있던 외로운 여행객은 고장 난 유료 화장실을 보며 ‘유럽은 도버해협에서 끝난다’는 말을 되뇌었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도시와 직접 경험한 런던은 너무나 달랐다.

외국에 갔다가 화장실 때문에 낭패를 봤다는 경험담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 누구나 아무 때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은 한국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뿐이다. 우리는 깨끗한 공중화장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공원, 웬만한 큰 건물, 하다못해 식당이나 가게에서도 큰 문제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만 해도 공중화장실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식당이나 가게 화장실은 손님한테만 열려 있다.

한국은 화장실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상’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무상’ 화장실은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듯하다.

최근 한 지인이 공원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외국인 관광객을 만났는데 그 관광객은 건축학도로서 “한국의 공중화장실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혹자는 새로운 한류 상품이나 되는 양 자랑스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상급식 논란에 대입해도 그런 말이 나올지 의문이다.

왜 정부는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소득과 상관없이, 수급자의 자격을 따지지 않는 ‘무상’ 화장실을 없애지는 못할망정 더 늘리려고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공짜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것일까. “간디학교와 같은 귀족 학교 학생들”까지 무상으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게 하는 것은 낭비 아닌가. ‘어딘가 화장실이 있겠지’ 하는 “게으르고 의존적인” 국민을 양산하는 건 아닌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건 아닐까.

‘무상’ 화장실은 국민들을 “노예의 길”로 이끈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사회주의적 정책 때문에 국민들이 자기 집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볼일을 보는 바람에 막대한 예산 낭비를 초래한다. 대안으로 저소득층만 무상으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게 하는 건 어떨까.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증명을 하지 못하면 바지에 실례를 해도 별 수 없다. 화장실마다 관리인도 필요하겠다. 최근 다시 울려 퍼지는 무상급식 비난 목소리를 듣다 보니 다음 차례는 ‘무상’ 화장실이 아닐까 싶다.

betulo@seoul.co.kr
2015-04-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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