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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 야구와 사랑에 빠지다

그녀들, 야구와 사랑에 빠지다

강신 기자
강신 기자
입력 2015-04-17 23:32
업데이트 2015-04-1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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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야구 1세대 최수정 대표팀 선수·연맹 국제이사

학창 시절 야구장의 푸른 잔디와 탁 트인 하늘에 매료됐다.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그 꿈을 서른 살에 이뤘다. 여자야구팀을 만들었고,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여자야구연맹 국제이사 최수정(40)씨의 삶은 한국 여자야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야구와 사랑에 빠진 최씨를 17일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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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야구의 ‘대모’인 최수정씨가 17일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여자야구 활성화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며 야구 배트를 들고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한국여자야구의 ‘대모’인 최수정씨가 17일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여자야구 활성화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며 야구 배트를 들고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고교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어요. 라디오 중계를 듣다가 재미를 알게 됐죠. 그러다 야구장에 처음 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파란 잔디며, 탁 트인 하늘이며…. 완전히 반해 버렸죠.”

최씨는 야구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라디오로 중계만 듣다가 실제 경기를 보고 나니 더 감동이 밀려왔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나 보는 것만으로 야구에 대한 그의 허기를 채울 수 없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직접 야구를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면서 “그러나 (여자가 야구를 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캐치볼하거나 코인 배팅하는 게 전부였다. 대학원에 소프트볼팀이 있긴 했는데, 그건 또 하기 싫었다”고 회상했다.

그랬던 그에게 어느 날 야구가 운명처럼 찾아왔다. 그는 “2004년 남동생이 여자야구팀이 생겼다는 방송을 보고 알려줘 바로 수소문해서 팀에 입단했다”면서 “‘비밀리에’라는 팀이었는데 투수를 하고 싶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공을 던져 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시험 삼아 던졌는데 웬걸, 공이 바로 코앞에 떨어졌다”면서 “직접 해보니 또 다른 세상이었다”고 덧붙였다. 2004년 야구를 시작한 그는 이듬해 변기명 초대 감독과 ‘나인빅스’를 창단했다. 2010년 여자야구연맹 선수이사로 뽑혔고, 2012년 국제이사가 됐다. 지금은 내년 부산 기장에서 열리는 여자월드컵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무엇이 그를 야구에 푹 빠지게 한 것일까 궁금했다. 그는 “여자들이 그동안 팀 운동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면서 “야구를 할 때면 제 뒤에 동료가 있다는 게 정말 든든했고, 팀플레이가 성공했을 때 쾌감은 말로 다 못한다”고 강조했다. 또 동료애도 야구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야구도 좋지만, 같이 야구하는 사람이 더 좋다. 언니, 동생들과 운동한 게 10년이 넘었다”면서 “남자들 의리보다 훨씬 진하다. 같이 운동하면서 쌓은 정이 깊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야구만의 매력도 있다고 했다. 그는 “프로는 포지션이 정해져 있지만, 아마추어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자기한테 맞는 걸 찾을 수도 있고, 끊임없이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퇴한 야구선수 송진우를 동경했던 그가 마운드에 서기까지는 꼬박 11년이 걸렸다. 그는 “꿈은 항상 투수였는데, 못하니까 감히 도전을 못 했었다. 야구한 지 11년쯤 됐는데 이제야 소원을 풀었다”면서 “잘 던져서 투수로 전향한 게 아니라, 젊은 포수에게 밀려났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주무기에 대해 묻자 “스트라이크만 던져도 다행”이라면서 “지금은 타자나 주자를 의식하지 않고 스트라이크존에만 넣으려고 집중한다. 지금 내 실력으로 다른 거 생각하면 공이 애먼 곳으로 날아간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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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정 한국여자야구연맹 국제이사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최수정 한국여자야구연맹 국제이사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인 그는 현재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니고 있지만 야구 때문에 직장도 옮겨야 했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는 “주말에 야구를 하는데, 회사에서 자꾸 토요일에 나오라고 했다”면서 “그래서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고 야구 사랑을 에둘러 표현했다. 미혼인 그는 야구 때문에 연애도 미뤘다. 그는 “야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점점 야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면서 “남자 친구가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지금은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인빅스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던 2008년에 일본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코치로 뽑혔다. 그는 “지도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영어, 실무 등을 처리하라고 뽑아 주신 거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 대회에서는 6위에 올랐고, 2010년 외야수로 뛴 베네수엘라 대회에서는 9위를 차지했다.

그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투수력 보강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 선수들이 체격에서는 안 밀리고 타격은 좀 되지만 문제는 투수”라면서 “월드컵 4강권 팀 투수는 최고시속 120㎞가 넘는데 우리는 아직 100㎞도 못 넘긴다. 클래스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자야구가 활성화되려면 전용구장이 굉장히 중요하다. 구장이 있어야 사람이 모일 수 있다”며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야구장 2시간 빌리는 데 25만원으로 돈 없으면 야구 못 한다”면서 “아이들이 동네에서 야구할 데가 거의 없다. 인프라가 많아져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른에서야 야구를 시작한 게 너무 아쉽다”면서 “조금만 더 빨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후배들은 신나게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의 당면 과제는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 여는 대회니까 부담이 된다”면서 “한국은 야구 강국인데, 여자야구는 국제대회를 유치한 경험은 거의 없고, 경기장 공사는 시작도 못했다”고 걱정했다. 그는 “기량에서 앞선 일본과 체력까지 겸비한 미국, 캐나다, 호주가 4강 전력”이라면서 “국내에서 여는 만큼 6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 그의 꿈은 여자야구 유소년팀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여자 어린이가 야구를 하기 쉽지 않다. 남자 어린이들과 한 팀에서 하다가 놀림을 받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이 봤다”면서 “여자 어린이들도 어린 시절부터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최수정 이사는

▲1975년 11월 27일 대전 출생 ▲대전 용전초등학교-용전중-충남여고-서울대-서울대 대학원 ▲2004년 첫 여자동호인 팀 ‘비밀리에’ 입단 ▲2005년 ‘나인빅스’ 창단 ▲2008년 여자야구대표팀 코치 ▲2010년 여자야구대표팀 선수 ▲2010년 여자야구연맹 선수이사 ▲2012년 여자야구연맹 국제이사
2015-04-1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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