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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배달에 2만원 “손주 세뱃돈은 어쩌나” 택배 할아버지의 한숨

10시간 배달에 2만원 “손주 세뱃돈은 어쩌나” 택배 할아버지의 한숨

오세진 기자
입력 2015-02-16 00:34
업데이트 2015-02-16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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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앞둔 70대 ‘실버퀵’ 심맹수씨의 힘겨운 하루

설 연휴를 닷새 앞둔 지난 13일 오전 7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의 인쇄소 골목. ‘실버퀵 기사’(지하철 노인택배원) 심맹수(74·서울 강북구)씨는 인쇄소를 돌며 200여권의 책자를 20ℓ짜리 ‘백팩’(등가방)에 넣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지만 심씨는 가벼운 기합과 함께 짊어졌다. 지난해 9월에 산 가방 줄은 이미 몇 차례나 뜯어진 흔적이 역력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얼른 움직여야 해. 손자들한테 줄 세뱃돈을 아직 못 벌었거든.” 심씨는 걸음을 재촉했다.

심맹수(왼쪽)씨가 지난 13일 지하철 교통약자 배려석에 앉아 택배 물건이 든 가방을 꼭 쥔 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심맹수(왼쪽)씨가 지난 13일 지하철 교통약자 배려석에 앉아 택배 물건이 든 가방을 꼭 쥔 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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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가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택배 물건이 든 가방을 들고 출구 계단을 오르고 있다.
심씨가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택배 물건이 든 가방을 들고 출구 계단을 오르고 있다.
심씨는 중구 을지로4가역 골목에 있는 택배회사 ‘총알탄 택배’의 경력 2년 차 택배원이다. ‘실버퀵’은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비교적 가벼운 물건을 주문받은 당일에 직접 배송하는 일로 10여년 전 노인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시작됐다. 이날 심씨는 오전 11시까지 지하철 1·2호선과 분당선 등을 갈아타고 경기 수원과 성남 분당의 인쇄소 거래처를 오가며 책자를 전달했다. “이 정도면 1만 9000원어치 되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심씨는 “최근 3~4년 동안 고향인 강릉에 성묘도 못 가서 이번에는 꼭 가려고 했는데, 차례 비용이랑 교통비를 생각하면 올해도 못 갈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평소 오전 9시~오후 7시까지 일하면 하루 2만원 정도를 번다. 하루 동안 벌어들인 택배요금에서 수수료 15%를 뺀 금액이 심씨 몫이다. 이렇게 한 달이면 50만원 남짓 손에 쥔다. 기초연금을 받지만, 99㎡(30평)짜리 전셋집에서 아내(69), 딸과 함께 살면서 생활비와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고 했다. 40여년 동안의 택시·버스기사 생활을 그만둔 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나왔다.

오후 2시쯤 일감이 들어왔다. 구로디지털단지역(2호선) 근처 봉제공장에서 청재킷 4벌을 받아 동대문 쇼핑몰 매장에 갖다줘야 했다. 심씨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는 “버스를 안 타고 지하철로만 갈 수 있는 장소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 했다. 점심도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웠다. 가끔 밥을 사먹더라도 3000원을 넘기지 않는 게 원칙이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심씨의 여름용 운동화는 앞창이 다 닳았다. “괜히 중국산 사서 발만 아파. 돈 좀 벌면 나도 ‘메이커 운동화’ 살거야. 하하하.”

동대문 쇼핑몰로 이동 중이던 오후 3시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가 또 울렸다. 배송을 마치는 대로 영등포구 대림동과 안산에 가서 휴대전화를 배달해야 한다는 ‘희소식’이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네.” 오전까지만 해도 ‘설 대목’이 없다고 울상이었던 그다. “동료가 손주들에게 줄 세뱃돈을 신권으로 바꿔왔다고 자랑을 했어. 그래서 내 지갑을 봤는데, 만원짜리 2장밖에 없더라고.”

이날 일과는 오후 7시 30분에야 끝났다. 기력이 다 빠졌지만, 안산에서 수유동 집까지 39개 역을 거슬러 귀가했다. 심씨는 지하철 안에서 연신 무릎을 매만졌다. 10년 전 의사가 연골 수술을 권했지만 “수술하려면 그것도 다 돈”이라면서 거부했다. 그래도 심씨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은퇴도 한가한 얘기야. 힘이 닿는 데까지 돈을 벌거야. 그나저나 손주들한테 세뱃돈을 줄 수 있으려나….”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15-02-1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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