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춘천 중도 유적 200년 뒤를 고민하라/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4-12-3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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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초(超)스피드인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한국인의 시간 관념은 무엇이든 슬로 템포인 나라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남들이 100년 걸린 것을 10년 만에 이루었다고도 하지 않는가. 문제는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 놓은 것을 벌써 비슷한 속도로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언저리에 살았던 저층 아파트는 벌써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남은 수명은 짧으면 10년, 길어 봐야 20년 남짓일 것이다. 그러니 한국인이 체감하는 상대적인 시간의 빠르기는 지은 지 200~300년 된 아파트에서 느려 터지게 살아가는 나라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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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철 논설위원

하지만 우리 역사가 언제나 빠르게만 흘러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왕조가 쇠잔해 가던 19세기는 변화의 추세에 동승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너무나 느리게 세월을 흘려보낸 시대가 아닌가. 미래 또한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뒤처졌던 변화를 따라잡겠다며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야 했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템포를 맞춰 살아갈 시대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시대의 조급한 성과주의는 우리 시대에서 그쳐야 한다. 한없이 느리게 살아가도 좋을 후손에게까지 악영향이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추억마저 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처럼 빠르게 살았던 시대의 산물은 빠르게 허물어도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느리게 살았던 과거의 산물만큼은 우리 손으로 훼손하지 말고 미래 느린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오늘도 땅속의 문화유산이 줄지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방식의 개발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는 재론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문화적 시각이 아닌 경제적 시각으로도 문화 파괴적인 개발은 미래 세대의 이익을 빼앗는 우리 시대의 탐욕일 뿐이다. 파리나 로마가 온 국민을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관광도시가 된 것은 이런 방식의 개발을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낡은 아파트 창틀 하나를 바꾸려 해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마당에 삽질 한 번만 해도 도굴꾼 취급을 받는 문화재보호제도 덕분이다. 그것은 이 나라 선조가 후손들에게 내린 축복이다.

우리 땅속의 문화유산이 그들 것만 못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문화적 열등감은 파괴적 개발 논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될 뿐이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도성(都城)이었던 서울만 해도 옛 모습은 로마나 파리가 부럽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엄청난 파괴가 이루어졌음에도 지하에는 당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복원할 수 있을 만큼의 기초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종로 양쪽에 들어섰던 조선시대 상점가 시전행랑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불행히 교보빌딩에서 종각 사거리까지 한 블록은 고층빌딩이 들어차면서 이미 흔적이 사라졌다.

지금 춘천 중도 유적이 다르지 않은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1967년 의암댐을 막으면서 생긴 중도는 신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의 보고다. 917기의 집터, 101기의 고인돌, 경작지 유적과 비파형동검과 청동도끼가 쏟아져 나왔다. 해자(垓子)와 환호(環壕) 같은 방어 시설도 확인됐으니 당시로서는 초대형 도시였다. 주거 밀집 지역을 담은 사진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세계적인 선사유적지로 이름을 알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춘천시가 이곳에 2018년까지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짓겠다고 나섰다. 최근 출범한 ‘춘천 중도 고조선유적지 보존 범국민운동본부’는 당연히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하(下)중도를 철저히 보존하고 전체를 하나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라는 것이다. 레고랜드가 정말 필요하면 유적이 적은 상(上)중도나 미군이 떠난 캠프페이지도 있지 않느냐는 대안도 제시했다. 중도 유적이 당대주의(當代主義)에 밀려 사라진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레고랜드를 갖고 싶어 하는 춘천시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200년 뒤 후손을 행복하게 하는 결정이 무엇일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2014-12-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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