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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이끄는 대로 기다리고 기다려”

“나무가 이끄는 대로 기다리고 기다려”

입력 2014-12-23 00:00
업데이트 2014-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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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조각가 데이비드 내시, 국내 두번째 개인전

“나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각자의 삶을 살다 가지요. 나무의 죽음도 인간들처럼 다양해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듯 폭풍에 쓰러져 죽기도 하고, 뿌리부터 질병에 걸려 죽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후나 질병으로 쓰러진 나무들에 새 삶을 주는 것이 나의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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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조각가 데이비드 내시
영국 조각가 데이비드 내시


영국의 조각가 데이비드 내시(69)는 야생에서 발견한 죽은 나무들에 형태를 부여하는 오브제 작업으로 잘 알려진 거장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 2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개막에 즈음해 기자와 만난 내시는 “나무들은 형태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면서 “내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내게 형태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죽은 나무만을 재료로 ‘환경적이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가 사용하는 나무의 종류는 캘리포니아의 삼나무부터 홋카이도 느릅나무, 굴참나무, 너도밤나무, 주목, 호랑가시나무, 유칼립투스 등으로 다양하지만 작업 방식은 동일하다.

“죽은 나무를 작업실에 가져와 건조시키면서 기다립니다. 어느 날 나무에서 특별한 존재감이 느껴지면 비로소 작업에 들어가지요. 나무의 형태와 갈라진 모양 등을 보고 작품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자연스럽게 작품을 만들어 나갑니다. 원하는 모양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이끌어주는 대로, 본연의 형태와 성질을 살려 가죠. 재료가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곤 합니다.”

그는 그래서 작품에 쓰인 나무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나무마다 역사가 다른 만큼 성격도 다르고 감정도 다르다. 가로로 잘 잘라지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세로로 더 잘 쪼개지는 나무도 있다. 작품과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들려주며 “수십년간 작업을 하면서 나무들의 특징을 익혔다”고 했다.

오랜 시간 나무를 다루면서 터득한 균형감과 감각이 살아 있는 작품들이 전시장 1, 2층을 메우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색된 나무의 붉은색과 표면을 불로 태워 만들어 낸 흑색의 드라마틱한 조화가 두드러진 작품들, 아예 검게 태운 토르소 형태의 나무, 짙은 빨간색 기둥들. 거친 암봉과 부드러운 흙이 조화로운 한국의 산수화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작품도 있다. 남아메리카의 코르크로 만든 돔과 드로잉, 코르크 나무껍질 채취 후에 나무줄기의 색깔이 변해 가는 과정을 담은 드로잉도 있다. 자연스러운 형태를 담았음에도 추상 조각의 정확한 어휘들을 사용한 작품들은 친숙하면서도 어딘가 의미심장하고 기념비적이다. 작가와 자연의 내적인 상호 연결성을 중시하는 그는 “자연과 소통할 때 생명에 대한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제 작업은 자연에 대한 헌신이자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킹스턴예술대학과 첼시미술대학에서 수학한 내시는 1973년 요크의 퀸엘리자베스홀과 웨일스의 오리엘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1975년 런던 헤이워드갤러리의 ‘조각의 조건’전, 1980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동시대 영국미술’전, 2004년 영국 테이트갤러리의 ‘추상조각 만들기와 설치하기’ 등 주요 국제그룹전에 수차례 참여했다. 2010~2011년 영국 요크셔조각공원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2~2013년 서리 큐가든 개인전은 미국 전역에서 순회전을 했다. 한국에선 2007년 국제갤러리에서 전시 후 이번이 두 번째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02)735-8449.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4-12-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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