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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종교는 정치 참여 말라” vs “신정일치 국가 건설” 세력다툼

[세계의 창] “종교는 정치 참여 말라” vs “신정일치 국가 건설” 세력다툼

입력 2014-12-23 00:00
업데이트 2014-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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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 가로지르는 세속주의 vs 이슬람주의 극한 충돌

#1 지난 8월 미국의 맹방을 자처하는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 공군이 리비아를 기습 폭격해 미국을 당황케 했다. 이들은 왜 미국 몰래 공습을 감행했을까?

#2 ‘아랍의 봄’ 투사였던 이집트 청년 아흐메드 알다라위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대원으로 활동하다 전사한 사실이 지난 3일 전해졌다. 경찰 출신으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가 왜 세계 ‘공공의 적’인 IS의 대원이 됐을까?

#3 터키의 판검사들은 왜 국민이 장기집권을 허락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할까?

위 세 가지 질문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발단의 단초는 하나다. 바로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충돌’. 얽히고설킨 중동 정세를 이 키워드를 통해 바라보면 분쟁의 원인과 실체가 드러날 때가 많다.

먼저 이집트와 UAE의 리비아 공습부터 살펴보자. ‘아랍의 봄’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 리비아에서는 이슬람주의 민병대와 세속주의 민병대가 일진일퇴의 내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월은 이슬람 민병대가 의사당과 정부 청사를 점령한 때다. 세속주의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집트와 세속주의 왕정이 통치를 하고 있는 UAE로서는 자신들의 턱밑에 이슬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미국은 왜 놀랐을까? 이집트와 UAE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면 이슬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웃 카타르와 터키도 개입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중동전문가 미셸 둔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가자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에게 리비아에서 4개국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다”고 분석했다.

피아 구분이 불분명해진 시리아 내전도 근원은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충돌이다. 처음에는 세속주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항해 모든 이슬람 세력이 함께 대항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이슬람 무장단체 내부에서 종파 분쟁이 터졌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이후 IS로 진화)가 다른 반군들을 제압해 가며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의 ‘괴물’이 됐다. IS의 단기 목표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세속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장기 목표는 미국을 침몰시키는 것이다.

이집트 청년 알다라위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전쟁의 희생양이다. 촉망받는 경찰이었던 그는 호스니 무바라크를 무너뜨린 항쟁의 최전선에 섰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 가져다준 해방 공간에선 이슬람주의 시위대와 세속주의 시위대가 충돌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한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를 급속도로 이슬람화시켰다. 이에 반발한 압둘 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무바라크보다 더 강압적인 철권통치에 나섰다.

알다라위의 삶을 추적한 파이낸셜타임스는 “알다라위는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시위대가 분열되는 것을 보고 절망했으며, 다시 군부가 집권하는 것을 보고 극단적 이슬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시민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시리아, 리비아, 예멘, 알제리 등에서도 알다라위와 같은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줄을 잇고 있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제 뉴스의 단골손님이다. 최근 그는 “무슬림 뱃사람들이 콜럼버스보다 314년 빠른 1178년에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했다”고 주장해 때아닌 역사 논쟁을 일으켰다. 여성학자들의 토론회에 참석해서는 “여성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평등할 수 없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터키 공교육의 이슬람화도 추진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에서 하마스를 지원하고, 시리아에서는 무슬림형제단 반군을 지원하며, 이집트 군사정권과 각을 세우는 원인은 그의 판단 기준이 이슬람주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에게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들은 터키의 검사와 판사들이다. 삼권분립과 신정분리에 의해 통치되길 바라는 사법부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통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터키는 1923년 중동 국가 중 처음으로 헌법에 세속주의 통치를 못 박은 나라다. 이 때문에 판검사들이 나서서 대통령과 대통령의 아들 및 측근의 비리를 캐고 있다. 가디언은 “터키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향방을 정하는 시금석”이라고 평가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용어 클릭]

■이슬람주의 이슬람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려는 이데올로기이다. 종교지도자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통치하는 신정일치 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세속주의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 종교의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중동에서는 주로 왕족과 군부가 독재 통치로 세속주의 정치를 유지해 왔다.
2014-12-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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