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민심 훑는 메신저… 정권 수호 vs 개혁 타깃
#. 1990년대 후반 경찰에 뛰어든 정보관 A씨는 순경 시절 올린 보고서가 소속 서(署) 정보과장의 눈에 띄었다. 정보과로 옮긴 뒤 3년 동안 내근을 하며 보고서만 썼다. A씨는 “일종의 수련과정인데 못 견뎌 옮기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A씨는 출신 대학과 가까운 경찰서에서 정보관 생활을 하면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이후 어려움이 커졌다. 정보제공자들의 입이 무거워진 것. 그래도 A씨는 지난주 여당 지역당원협의회 터줏대감과 일간지 기자, 밑바닥 정보에 밝은 대형 유흥주점 사장 등을 만났다.검찰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수사는 박관천 경정이 빼낸 문건을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2명이 복사·유포한 것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공교롭게도 정보분실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정보 경찰’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도 늘었다.
하지만 베테랑 정보관들은 “정보 경력도 없는 박 경정이 조직에 생채기를 남겼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3300여명에 이르는 정보 경찰들이 밑바닥에서 훑은 정보는 청와대까지 전달돼 민심을 가늠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담뱃값 인상, 전·월세 대책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현안은 물론, 청와대와 언론사 오찬을 앞두고도 ‘특별요구첩보’ 형태로 정보 수집 지시가 내려오기도 한다.
10여년 경력의 베테랑 정보관은 “냉정하게 말하면 ‘정보 경찰’은 정권과 경찰을 위한 조직”이라면서도 “밑바닥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해 정권의 헛발질을 막는다는 점에서는 사헌부·사간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정보 경찰은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분실 폐쇄나 조직 축소도 거론된다. 하지만, 없애고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결국, 정보를 활용하는 ‘윗선’의 의도가 문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2014-12-22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