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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블로그] 잠자는 돈…잠자고 있는 법안

[경제 블로그] 잠자는 돈…잠자고 있는 법안

입력 2014-12-20 00:00
업데이트 2014-12-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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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릴 적 만든 통장, 기억 나십니까? 지금까지 그 통장을 잘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이처럼 시중은행에는 5년 이상 이용 실적이 없어 완전히 잊힌 돈이 수천 억원 쌓여 있습니다. ‘휴면예금’ 얘기입니다. 정부는 사실상 주인 잃은 이 돈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7년 미소금융재단(휴면예금관리재단)을 만들어 저소득층과 금융취약 계층 지원 등에 쓰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 8월 이후 휴면예금이 사라졌습니다. 5년간 거래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자가 지급되고 있었다면 휴면예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가 나온 시점입니다. 이 판례가 나온 뒤 그 전까지는 은행의 ‘잡이익’에 편입되던 휴면예금이 더 이상 휴면예금이 아니게 됐습니다. 자연히 미소금융재단으로 가던 은행의 휴면예금 출연금도 뚝 끊겼습니다. 2011년 640억원이던 출연기금이 지난해 3억 9000만원으로 급감했습니다. 올해는 이보다도 적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름뿐인 휴면예금관리재단인 것이지요.

이에 금융위원회는 미소금융재단의 주요 재원인 휴면예금이 지속적으로 확보될 수 있도록 은행 약관과 휴면예금법을 개정하는 내용의 ‘서민금융 지원제도 개선방안’을 지난해 9월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1년 반이 다 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찾아가지 않는 돈을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다 보니 은행이든 정부든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긴 주인에게도 잊혀진 돈인데 악착같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습니다.

현재 법제처 심사 중인 휴면예금법 개정안은 내년 상반기쯤에나 국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휴면예금이 ‘부활’하려면 소멸시효에 관한 은행 약관도 수정돼야 합니다. 이런 속도라면 내년에도 휴면예금 출연은 요원해 보입니다. 미국은 ‘미청구재산법’에 따라 주인이 찾지 않는 모든 종류의 재산을 주(州)정부 산하 재단에서 관리, 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미소금융재단의 이름과 역할을 제대로 찾아줘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4-12-2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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