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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연말 술시장에 소비자는 없다/정기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연말 술시장에 소비자는 없다/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4-12-10 00:00
업데이트 2014-12-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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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홍 논설위원
정기홍 논설위원
술의 계절인 연말이다. 올해 소주 시장은 저도(17도대) 소주의 확산으로 여느 해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돈다. 때맞춰 하이트진로가 알코올 도수를 17.8도로 낮춘 ‘참이슬’을 내놓고 롯데주류도 17.5도짜리 ‘처음처럼’을 출시했다. 여기에 ‘좋은데이’(16.9도)로 부산·경남 지역에서 저도소주 시장을 넓혀 온 무학 등 지역 업체도 수도권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면서 ‘저도 소주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주류 업계의 성수기 마케팅이 극성스러운 건 당연하지만 업체 간의 과열된 마케팅이 범상치만 않아 보인다. 강남권과 대학가 등 A급지에서는 경쟁 업체의 술을 빼는 조건으로 거액이 뿌려진다는 말이 파다하다. 이 과정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인 주류도매상이 주류 제조사로부터 ‘백마진’을 챙기는 것은 상례다. 음식점에서 소주를 주문하면 십중팔구 특정 업체의 브랜드를 내놓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술은 한번 입맛을 들이면 쉽게 바꾸지 않는 특성으로 업체에서는 시장점유율을 생명줄처럼 여긴다. 소주의 고객 충성도는 특히 높은 편이다. 이 정도면 통신업체들이 불법지원금을 뿌리는 시장교란 행위와 비할 바 아니다. 주류 업체들이 각종 음해와 비방을 하면서 처벌을 받은 것과는 또 다른 양태다.

그런데 술시장에서 소비자는 안중(眼中)에도 보이지 않는다. 주류사와 도매상, 음식점(유흥업소) 간에 이어지는 농간만 보일 뿐이다. 시장이 왜 이렇게 됐을까. 일상적으로 주류사에서 판매 할당량을 정하면 도매상은 대규모의 끼워팔기를 접목해 음식점 등에 술을 공급한다. 예컨대 도매상이 30병들이 두 박스를 받을 때 한 박스를 공짜로 받아 합법을 가장한 이벤트용 등 비매품으로 공급하는 경우다. 음식점 등에서 자주 보는 적지 않은 이벤트 당첨 소주가 이런 유에 속한다. 판촉비 등으로 가장한 매출의 누락이고 엄연한 세금 포탈이다.

주류 업계에 밝은 회계사의 말은 더 구체적이다. 주류사와 도매상은 차량으로 술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술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체로 파손량은 실제보다 부풀려 보고된다. 서류상에 기록된 파손 물량을 빼돌려 무자료로 도매상 혹은 음식점 등에 공급할 수 있어 가끔 써먹는다. 병마개 수로 매출량을 점검 관리하고 주류 전용카드로 결제를 해야만 하는 법망을 피하기 위한 수법이다. 또 다른 구멍도 있다. 소매 음식점을 활용한 편법이다. 세법상 5만원 이하의 거래는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과세 대상이 안 되고, 소주의 경우 한 자리에서 보통 5만원어치 이상을 먹지 않으니 과세 대상에서 빠지는 것을 악용한다. 모든 업체와 음식점에서 광범위하고 손쉽게 활용하는 방식이다.

지금의 우리 술시장에는 잘못된 유통 관행이 고착화돼 있다. 이문은 주류사와 도매상, 음식점에서만 머물고 정작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가는 구조다. 특정 업체가 기존 시장을 뚫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기만큼이나 어려운 지경이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무학이 주도하는 부산·경남에서 고전하고, 수도권에서 무학 등 지역 소주가 큰 성과를 못 내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주무 당국인 국세청도 뾰족한 수를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업계가 합법적 판촉 행사로 치장한 것을 가려내지 못하면 시빗거리가 될 수 없다. 자유시장 체제에서 특정 상품을 싸게 팔았다고 제재하지 못하는 이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등을 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들이 입을 닫으면 내용을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당국이 부당거래 행위에 대해 뒷짐만 진 채 그냥 둘 일은 아니다. 유통과정 추적 조사를 강화하고 공시 체제를 다시 짜야 한다. 지금보다 강화된 월별·분기별 공급·판매 현황을 공시하는 시스템을 속히 도입하고, 기름값처럼 지역별 가격을 적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만성적인 뒷거래가 잦아들어야 품질 경쟁이 일고 업체 간의 시장 진입도 자유로워진다. 소비자도 현장에서 선호하는 술을 적극 주문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이래야 시장 왜곡을 바로잡고 봉 노릇이 아닌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게 된다.

hong@seoul.co.kr
2014-12-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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