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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모뉴엘에 1000억원 물린 은행원들 절절한 자기반성 “무지했다… 관행을 버리자”

[단독] 모뉴엘에 1000억원 물린 은행원들 절절한 자기반성 “무지했다… 관행을 버리자”

입력 2014-11-20 00:00
업데이트 2014-11-20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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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외환업무 팀장급 200여명 긴급소집 왜

“해외 외상매출채권 할인은 솔직히 그동안 서비스 개념이었습니다. 다른 은행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죠. 충분한 검증 없이 대출해 주던 관행을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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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중구 명동 기업은행 본점 대강당. 전국 영업점에서 외환업무를 담당하는 팀장급 200여명이 본점의 긴급 호출을 받고 한자리에 모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수출채권 매입’(OA 방식)과 관련한 교육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반성’과 ‘재발 방지’ 자리였다. 기업은행은 가짜 수출 서류로 사기 대출을 받은 모뉴엘에 1000억여원을 물린 상태다. 기업은행을 포함해 금융권이 물린 돈만 총 7000억원에 육박한다.

김모 부장은 “수출기업들이 은행에는 슈퍼 갑이었다. (다른 은행에 고객을 빼앗길까 봐)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대출(채권 매입)을 해 줬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외국계 은행이 먼저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국내 은행들 간에는 수출업체 대출 경쟁이 치열했다.

기업은행의 이런 자아비판은 무역보험공사(무보)와 ‘네 탓’ 공방을 벌이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지난달 모뉴엘의 사기 행각이 세상에 드러나자 시중은행들은 “무보 보증서를 믿고 대출해 줄 수밖에 없다”며 “은행들이 일일이 수출 서류가 가짜인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날 ‘비공개’ 교육에서는 가슴을 후벼 파는 자책과 질책이 쏟아져 나왔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딱딱하게 굳어졌다. “실무자들이 외환업무 규정이나 요령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목에선 시중은행 외환업무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었다.

모뉴엘 사태 이후에도 ‘묻지 마 대출’이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도 있다. 김 부장은 “지역본부에 결재를 올린 대출 신청서 중 (일선 지점에서) 형식상 서류를 작성한 게 있다면 꼭 얘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종의 ‘자진 신고’ 기회를 준 것이다. 김 부장은 “지점 평가를 의식해 지금까지는 실적 채우기에 급급했지만 서류가 미비한 곳은 스스로 대출을 거부해 달라”며 “이런 경우는 실적 부담을 줄여 주겠다”고 덧붙였다. 관련 규정 신설도 약속했다. 그동안 별다른 규정 없이 수출업체 채권 매입이 취급됐다는 방증이다. 외환사업부의 한 관계자는 “예컨대 ‘일반거래’ 기업과 ‘특수무역’ 기업으로 분류해 대출 조건과 한도를 이원화할 예정”이라며 “리스크가 큰 거래처는 한도를 축소하거나 거래 제한을 둘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육 끄트머리에 권선주 행장의 ‘당부’가 전달됐다. 권 행장은 “모뉴엘은 기업은행의 외환 역량과 제도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 사태”라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당을 나오던 한 실무자는 “교육을 받는 내내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관행처럼 해 오던 부분에 대해 많이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지법 파산2부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모뉴엘에 내려진 포괄적 금지명령을 19일 해제했다. 모뉴엘을 상대로 한 채권자들의 가압류, 가처분, 강제집행이 가능해졌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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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Open Account·오픈어카운트) 수출업자가 수입자와 선적 서류 등을 주고받은 뒤 수출채권(외상매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해 현금화하는 방식이다. OA 방식은 선적 서류 등이 은행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은행은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이나 기업의 재무제표만 보고 대출하는 경향이 있다.
2014-11-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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