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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하나도… 현대판 왕조 실록

수첩 하나도… 현대판 왕조 실록

입력 2014-08-23 00:00
업데이트 2014-08-23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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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기록관 2008년 개관… 법령 정비 불구 지정기록물 열람·회의록 실종 등 미흡함 드러나기도

박근혜 대통령은 평소 수첩에 깨알같이 메모를 하는 걸로 유명하다. 2018년 임기가 끝난 뒤 박 대통령이 기록한 수첩은 어떻게 될까.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으로서 남긴 작은 메모지 하나라도 모든 소유권은 국가에 귀속된다. 수첩이 가야 할 곳이 바로 대통령기록관이다.

완벽한 보안 속에 총 1968만여건의 역대 대통령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소재 국가기록원의 서고.  대통령기록관 제공
완벽한 보안 속에 총 1968만여건의 역대 대통령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소재 국가기록원의 서고.
대통령기록관 제공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 관련 문서와 전자기록물, 선물 등 대통령이 남긴 모든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국가기록원 소속 기관이다. 2007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 주도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제정하면서 2008년 4월 문을 열었다. 대통령기록관은 엄격한 보안과 최첨단 보존장비를 갖추고 있다. 서고의 경우 내진 설계는 기본이고 벽면 두께가 60㎝나 되며 ㎡당 120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다.

대통령기록물제도는 한국 기록관리제도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관(史官)은 궁중에서 교대로 숙직하며 조정 행사와 회의에 모두 참석, 일종의 속기록인 사초(史草)를 작성했다. 사초는 임금도 볼 수 없었고 유출하거나 왜곡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사형으로 다스렸다. 실록을 편찬하면 사초는 모두 자하문 밖 세검정 차일암에서 물에 빨아 기록을 파기하는 세초(洗草)를 했다. 먹물로 쓴 글자와 한지는 뭉개진다.

●기록물 보존부터 평가·대국민서비스도 담당

세초를 하는 것은 사초 내용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조선시대 500년 동안 사초를 본 것은 연산군밖에 없었으며, 그나마도 신하들이 모두 사초 열람을 반대해 여섯 곳만 발췌한 것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대통령기록관은 사초째 보관하도록 한 것이다. 더구나 과거 정부기록보존소가 조선시대 사고(史庫)처럼 기록물을 보관하기만 했던 것과 달리 대통령기록관은 보존뿐만 아니라 정리와 평가, 연구 지원, 대국민 서비스까지 담당한다.

법령은 정비했지만 현실은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국가적 논란이 됐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문제는 기록연구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국회 결의를 거쳐 7년·15년·30년 등 지정한 보존 기간 동안 봉인하는 지정기록물을 열람하도록 한 것은 조선시대로 치면 실록을 공개한 셈이다. 더구나 정상회담 속기록을 둘러싼 논란은 ‘사초 공개’나 다름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물을 괜히 남겨서 고난을 자초했다”는 평가와 함께 기록 관리의 근간을 흔들어 버렸다. 특히 2008년에 봉인됐던 e지원 기록물에서 회의록이 사라졌다는 것은 대통령기록관의 신뢰까지 땅에 떨어뜨렸다.

●보관 기록물 모두 1968만여건

현재 대통령기록관이 보관 중인 기록물은 모두 1968만 8049건. 이 가운데 1087만 9864건은 이명박 전 대통령, 755만 7118건은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이다. 얼핏 이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긴 것 같지만 구체적인 내역을 두고는 논란이 적지 않다. 2008년부터 4년간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이 82만 5701건이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10배 이상 늘었다는 점을 비롯해 중요 국정 자료라 할 수 있는 비밀기록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것도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인 ‘공감코리아’(현 정책브리핑) 기록물 367만여건, 단순반복 업무인 식수 관리 등에 사용하는 개별업무 시스템(약 329만건), 경호처(6만여건) 등 실질적인 대통령기록물로 보기 어려운 기록물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는 “참여정부와 비교해 숫자를 끼워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은 현재 진행 중인 이 전 대통령 관련 기록물 재분류 결과를 지켜봐야 명확하게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세종시 3만㎡ 새 청사로 분가

대통령기록관은 현재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세종시 문화시설지구에 짓고 있는 새 청사가 내년 하반기 완공되면 시범운용을 거쳐 내후년부터는 별도 건물로 분가할 수 있다. 국무총리실 동쪽 호수공원과 인접한 곳에 자리 잡게 될 세종시 새 청사는 공사비 1111억원을 들여 연면적 3만 1219㎡,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서고 넓이만 해도 5953㎡나 된다.

다만 이전 이후 필요한 예산 가운데 200억원가량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게 걸림돌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기획재정부와 내년도 예산안 협의를 하고 있다”며 “예산편성이 안 되면 청사 이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올해 대통령기록관리 예산 규모는 69억원, 정보화 관련 예산은 12억원이다. 대통령기록물 공개 재분류 대상이 올해 15만건에서 2017년에는 230만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폭주하는 업무량을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2014-08-2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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