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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위한 파격은 큰 울림이었습니다

약자를 위한 파격은 큰 울림이었습니다

입력 2014-08-22 00:00
업데이트 2014-08-2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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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기자가 돌아본 ‘교황이 떠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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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가난한 자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간 이 땅에 머물며 이어간 배려와 소통의 행보는 짜릿짜릿한 감동의 점철이었다. 찾아가서 보듬고 눈을 맞춰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낮은 사목’은 흔히 볼 수 없었던 파격이기에 더욱 빛이 났다. 이제 교황이 떠난 자리에서 지난 4박5일을 찬찬히 반추해본다. 과연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얼마나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교황을 대하지는 않았을까.

30년 만의 교황 방한, 그것도 한국 순교자 124위의 시복식을 직접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한국천주교에는 또 만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국천주교는 최고의 예우며 차질없는 진행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교황의 진짜 마음을 살펴 실천했다고 보기엔 모자란 점이 적지 않다.

우선 교황이 방한 내내 관심을 보였던 세월호 유가족들 입장에서 따져보자. 공항에서 유족을 처음 만나 관심을 보였던 교황은 이튿날 유가족들이 전해준 노란 리본을 모든 미사 때 줄곧 가슴에 달고 있었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황을 수행하며 그들을 함께 만난 우리 사제 중 노란 리본을 단 이는 손꼽을 정도였다.

한국의 사제들이 굳이 노란 리본을 달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수행 기자단에게 한 말을 곱씹어보자.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 적어도 한국 천주교와 사제들이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얼마나 교황의 뜻을 이해했는지 되묻게 된다. 대신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직전 유족들이 요청해 교황과 만난 순간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에게 교황이 세례성사를 베풀던 그 순간도 비공개로 진행해 언론의 접근을 차단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교황의 큰 뜻을 왜 숨겨야 했을까.

한국천주교는 외국 선교사 없이 평신도들이 자생적으로 공동체를 일궈 태동한 특이한 역사를 갖는다. 종교 자체만으로도 자존과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천주교는 교황 방한 때도 그 위상과 자존을 살렸어야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행사마다 현장의 한국 사제들은 그저 바티칸 주교며 사제들의 보조 역할에 머물렀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순명(順命)의 겉모양뿐인 실천이 아니었을까. 꽃동네에서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수도자 3명을 일으켜 세우는 교황의 당황한 표정이 생생하다.

교황이 떠나는 마지막 날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도 그 모순된 그림자가 남는다. 한국천주교 1번지 명동성당이라는 공간과 미사의 종교적 특성상 종교 기자들이 현장취재를 하기로 돼 있었지만 미사 전날 급작스레 대통령의 미사 참석이 결정돼 청와대 출입기자들로 취재진이 바뀌었다.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선 원성이 터졌다. 결국 프레스센터 스크린을 통해 중계되는 미사 장면을 보고 기사를 써야만 했던 일도 씁쓸한 뒷담화다.

종교계는 어떤가. 교황 방한에 각 종교 수장들이 낸 환영사 말고 한 일이 무언가. 남의 종교 일이니 뒷짐 지고 쳐다만 보자는 구경꾼에 더도 덜도 아니다. 자원봉사라도 참여해 작은 보탬을 줬다면 훨씬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명동성당 미사 직전 12대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삶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라고 했던 교황의 당부가 무색하다.

지금 교황이 떠난 뒤에도 번져만 가는 감동과 교훈의 실천은 이제 지도자들의 피할 수 없는 몫이다. 물론 한국천주교가 줏대를 세워 길을 찾아내는 게 우선이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당시 명동성당에 집결한 시위대를 강제연행하려는 공권력을 향해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외침은 그 길을 찾는 또렷한 이정표일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2014-08-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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