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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열차’ 라베스티아를 탄 아메리칸 드림 종적 감출까

’짐승 열차’ 라베스티아를 탄 아메리칸 드림 종적 감출까

입력 2014-08-01 00:00
업데이트 2017-03-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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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출신 美 불법이민자 탑승 화물열차 검문 강화

중미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출신 불법 이민자들의 미국을 향한 꿈은 ‘라 베스티아’(La Bestia)를 타는 데서 시작한다.

라 베스티아는 우리말로 ‘짐승’ 또는 ‘괴물’이라는 별명을 가진 화물열차다.

이 열차는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가 접경하는 곳에서 멕시코 북부와 미국이 접경하는 곳까지 수천 ㎞를 달린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중미 이들 나라의 밀입국자들이 대부분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미국과 멕시코, 과테말라 정부가 라 베스티아에 대한 검문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보호자가 없는 ‘나홀로 아동’을 포함한 불법 밀입국자가 최근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 꿈을 향한 고난의 여정…추락사 성폭행·강도 무방비 노출

밀입국자들은 대부분 ‘무임승차’ 형식으로 라 베스티아에 올라탄다.

환풍구도 없는 빈 화물칸에 자리를 얻는 행운은 승무원에 뇌물을 줄 형편이 되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나머지는 화물칸 위의 난간에 기대 줄지어 앉는다.

이들의 소지품은 국경에서 밀입국 알선 조직을 만나 건네줄 돈과 물, 옷가지, 휴대전화 등을 담은 간단한 가방이 전부다.

마실 물 한 병도 없이 무작정 올라타는 가난한 밀입국자도 상당수다.

열차가 출발하면 이들의 여정도 시작된다.

1천㎞를 넘는 거리를 달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 도착하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이들은 이후 미국 텍사스 남단에 맞닿은 멕시코 동북부 타마울리파스주의 레이노사나 북부 치와와주의 시우다드 후아레스, 미국 애리조나주로 통하는 소노란 사막 등 세 군데 중 한 군데를 선택해야 한다.

전체 여정은 길게는 수천 ㎞에 달한다.

라 베스티아에 올라탄 가난한 밀입국자들은 마약 갱단 등 갱단의 강탈과 성폭행 등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열차가 정차하는 곳마다 어김없이 약탈자들이 기다린다.

마약 갱단뿐 아니라 검문소 근무자들 자체가 돈을 뜯는 무법자인 경우도 많다.

빼앗길 돈마저 없으면 부녀자들은 성폭행을 당하고, 남자들은 두들겨 맞기 일쑤다.

이를 견디다 못해 정차역에서 구걸해 돈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강도들이나 배고픔보다 더 두려운 것은 달리는 열차의 화물칸 위에서 졸다가 떨어지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난다 해도 ‘꿈’은 끝난다. 추락사하거나 열차 바퀴에 치여 팔다리가 절단되는 끔찍한 일은 실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2013년 8월에는 멕시코 남부 타바스코주의 한 골짜기에서 라 베스티아가 탈선하면서 전복돼 밀입국을 시도하던 35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프리아 이노호사라는 한 과테말라 출신의 밀입국자는 최근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라 베스티아에서 겪은 비참한 실상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가 본 중미의 한 여성은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국경까지 왔으나 어린 아들이 탈진해 열차 위에서 숨을 거두자 멕시코 북부의 황량한 땅에 묻었다고 했다.

이노호사는 여성들이 강간당하는 장면과 강도들이 돈을 빼앗고 폭행하는 현장도 수차례 목격했다.

탈수와 굶주림, 멕시코 정글의 벌떼 공격 등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은 수없이 전개된다.

그는 악몽과도 같은 상황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들을 본다는 집념으로 견뎌냈다고 한다.

199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밀입국에 성공한 엘살바도르 출신의 한 남성은 과테말라와 멕시코 국경까지 나흘간 버스로 이동한 뒤 라 베스티아에 옮겨탔다.

달리는 라 베스티아에 목숨을 걸고 올라타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주에서 내린 뒤 한 달간 청소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미국 밀입국을 두 차례 시도한 끝에 성공했다.

◇ 밀입국자들의 수호신 ‘라스 파트로나스’

라 베스티아는 멕시코시티를 향하는 과정에서 멕시코 동남부의 툭스판 등 항구가 있는 베라크루스주를 지나간다.

베라크루스는 멕시코의 악명 높은 마약 갱단인 ‘로스 세타스’와 ‘걸프’가 피비린내나는 세력 경쟁을 펼치는 곳이다.

밀입국자들은 이곳에서 돈을 뜯으려고 길목을 지키는 마약 조직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폭행까지 당하는 등 절망적인 상황에서 멕시코시티와 인접한 베라크루스의 내륙도시인 코르도바를 지나갈 때 ‘천사’를 만나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열차에 물과 빵을 건네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라스 파트로나스’(Las Patronas)라고 불린다.

모두 부녀자인 이들은 코르도바의 작은 마을인 ‘라 파트로나’(La Patrona)의 철길 건널목에서 음식물이 든 비닐봉투를 들고 하루 세 차례 지나가는 라 베스티아를 매일 기다린다. 파트로나는 스페인어로 수호성인, 수호신의 뜻이다. 이들을 호칭하는 라스 파트로나스는 마을 이름에서 딴 것이다.

파트로나스는 20년 전 로메로 바스케스 자매가 식료품점에서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사 돌아오던 중 건널목에서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배고프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준 것이 시초였다. 이들 자매는 집에 돌아가서 야단을 맞았지만 나중에 친인척 여성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그 일에 나서게 된다. 이들은 매일 서른 명분의 밥과 삶은 콩, 생수를 준비하고, 멕시코인들이 즐겨 먹는 옥수수빵인 토르티야도 만든다.

밀입국자들에게 ‘파트로나를 지날 때 음식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점차 퍼졌다.

그들은 시속 수십㎞의 속도로 이곳 건널목을 지나가는 열차의 난간을 한 손으로 붙잡고 한 손은 파트로나스가 든 비닐봉지를 낚아챈다.

생수는 달리는 열차에서 낚아채기 쉽게 두 병을 30㎝ 길이의 줄로 비리 묶는다.

음식을 받으려는 밀입국자들이나 건네주는 파트로나스 모두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밀입국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열차에서 떨어지고, 파트로나스는 열차 바퀴에 휘감겨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유투브 등에는 이러한 장면을 찍은 영상이 많다. 파트로나스 중에는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도 있다. 하지만 달리는 열차 바로 옆에서 음식을 건네주는 일은 아주 능숙하다.

파트로나스는 작년 멕시코 최고 인권단체상을 받았다.

이 마을의 철길 건널목 주변에는 파트로나스를 상징하는 연한 핑크색의 콘크리트블록 조리장이 빽빽하게 형성돼 있다. 라 베스티아의 밀입국자들을 위한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공장형 조리장도 생겨났다.

파트로나스는 라 베스티아에서 음식을 구걸하는 이들을 처음 봤을 때 호기 넘치는 멕시코 청년들이 무전여행을 하는 줄로 착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꿈을 찾아 밀입국을 시도하는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출신이다.

가난과 범죄를 공통점으로 하는 이들 나라에 최근 수년간 마약 갱단이 스며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고통받고 있다.

마약 갱단이 조직에 가입하라고 협박하고, 부녀자를 성폭행하는 등 괴롭히는 데 못 이겨 미국행을 선택하는 사례도 많다.

멕시코에서 기승을 부리던 마약 조직은 펠리페 칼데론 정권(2007∼2011년)이 펼친 마약범죄와의 전쟁을 피해 근거지를 중미로 많이 옮겼다.

파트로나스는 멕시코의 마약 갱단 단속에 따른 부작용으로 피해를 봤을 수도 있는 이들의 배고픔을 다소나마 달래는 셈이다.

◇ 라 베스티아 단속 강화 밀입국 예방 최선책 될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인도주의적 위기’로 표현한 미국의 불법 이민자 급증 사태는 최근 수년간 악화했다.

특히 밀입국자 중에 보호자 없는 ‘나홀로 아동’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 심각하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 통계에 따르면 2009년 미성년 밀입국 아동은 2만명 정도였으나 올들어 3배에 육박했다.

2009년 미성년자 중 중미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출신의 비중은 15% 안팎이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멕시코 출신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출신이 줄면서 2012년에는 이들 세 나라 출신이 50%를 넘었고 올들어 80% 안팎으로 증가했다.

2008년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가 마련한 법안은 멕시코나 캐나다 출신이 아닌 다른 나라의 미성년 밀입국자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쉽게 추방할 수 없게 돼 있다.

올 들어 부쩍 늘어난 밀입국 미성년자들은 미국 텍사스 등지의 보호소에 넘쳐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민법 개혁을 거론했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 논란만 분분한 채 방법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멕시코, 과테말라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밀입국자들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라 베스티아를 대부분 이용한다는 점에서 철로 검문소 설치를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달리는 열차에 죽음을 무릅쓰고 올라타는 이들을 검문소를 추가로 설치해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문소가 늘어나는 것이 큰 장애물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풍선효과처럼 빠져나갈 방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수용자 입장인 미국보다는 밀입국자를 양산하는 나라들에서 근본 대책이 앞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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