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위대한 이유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을 바친다는 군인의 매뉴얼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겁니다. 군인은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이잖아요. 죽음에 대한 공포, 패배에 대한 두려움…. 그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조국에 충성한다는 매뉴얼을 실천했어요.”
●인간·성웅 두 얼굴의 이순신 오롯이 표현하기엔 한계… 흉내에 그쳐
그는 “이순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이순신의 눈빛과 말투, 체취와 머릿결까지 모든 것을 말이다. 하지만 등을 돌려 앉은 이순신은 그가 ‘장군님, 말씀 좀 들어 보세요’라며 고개를 조아려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연기는 어차피 흉내 내기예요. 실존 인물을 제 상상력을 동원해 흉내 내는 것에 지금까지는 자유로웠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 연기로 버무려서는 그분을 오롯이 표현해 낼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절망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영화는 이순신의 두 얼굴을 그린다. 하나는 뛰어난 지략과 기개를 품은 ‘성웅’ 이순신, 또 하나는 슬픔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인간’ 이순신이다. 그는 잠결에 죽은 부하들의 환영을 마주하고는 술 한잔 권하며 눈물을 흘린다. 집무실에 어머니의 위패를 모셔 놓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는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읽었다. 상투를 틀고 멍하니 앉아 어머니를 생각하며 주절주절 넋두리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순신은 초능력자나 슈퍼 히어로가 아닙니다. 희로애락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이순신의 모습을 영화에 담기 위해 감독을 못살게 굴었단다. 집무실에 어머니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절하는 장면이 그의 제안에서 나왔다.
●난중일기 종이가 닳도록 읽었지만 절망해 보기는 처음
그의 말처럼 이순신은 초능력자가 아니듯, 명량해전의 승리는 이순신뿐 아니라 이름 없는 이들의 것이기도 했다. 영화는 장군을 믿고 목숨을 바친 수병들과 손이 피범벅이 되도록 노를 저었던 백성들을 비중 있게 담는다.
150억여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명량’은 올여름 한국 영화 화제작 중 유일한 정통 사극이다. 멜로나 코미디 등 잔가지는 쳐내고 명량해전 그 자체를 스크린에 되살리는 데 집중한다. 더러는 애국주의가 불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그는 “상업영화를 통해 애국심을 느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응수했다. “감독과 처음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 나온 이야기가 이봉창 열사예요. 도쿄 한복판에서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일본 헌병을 향해 ‘나를 잡아가라, 하지만 점잖게 다뤄라’라고 했대요. 얼마나 굉장한 울림이에요? 우리 역사엔 영화의 소재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는 “후손에게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리는 건 사극영화의 순기능”이라면서 “‘명량’을 기폭제로 우직한 사극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