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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가 몸에 밴 아이들이었을 뿐인데…

질서가 몸에 밴 아이들이었을 뿐인데…

입력 2014-05-10 00:00
업데이트 2014-05-10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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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승무원들이 말한 단원고 학생들

“단체 수학여행 학생들을 많이 접해 봤지만 단원고 학생들처럼 질서 있고 말 잘 듣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의연했던 행동들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생존 승무원들에 의해 나왔다. 학생과 교사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질서정연하게 선내방송 지시에 따랐지만 이 같은 행동이 결과적으로 희생을 키웠다는 아쉬움을 지울 길이 없다.

세월호에서 배식을 담당했던 승무원 김모(51·여)씨는 “밥이나 반찬을 더 달라고 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면서 “때문에 배식 시간이 다른 때보다 30분이나 빨리 끝났다”고 말했다. 조리장 최모(58)씨는 “교사들도 학생들 뒷줄에 서서 배식을 기다리는 등 그 선생에 그 학생들이었다”면서 “학교 전체가 교육이 잘 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단원고 학생들은 ‘침착하게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에 따라 객실에 그대로 머물렀다. 특히 4층의 경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탈출이 용이한 브리지(조타실)가 객실 앞쪽에 있었지만, 그곳으로 달려간 학생과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객실 옆 승무원실에 있던 필리핀 가수들조차 브리지로 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학생들은 방송 지시대로 자리를 지켰다. 당시 선박 지휘부에 해당되는 브리지에서는 이준석(69) 선장과 항해사·조타수 등이 탈출을 도모하고 있었다. 50대 이상 일반 승객 생존율이 학생들보다 높았던 것은 방송을 믿지 않고 밖에 나갔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탈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승무원 김씨는 “말 잘듣는 학생들은 희생되고 방송을 믿지 않은 승객들은 살아남은 결과가 됐다”고 탄식했다. 학생들은 탑승 이후 사고 전까지도 반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승무원들은 전했다. 객실 서비스를 보조한 신모(48·여)씨는 “학생들이 불편·불만을 드러내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서 “학생들은 대개 떠들기 마련인데 이들은 서너 명씩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안내데스크 강혜성(32)씨는 선원들의 탈출 사실을 모른 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는 방송을 되풀이하다 나중에 빈사상태로 구조됐지만 검찰에 구속됐다. 구조 매뉴얼상 강씨는 퇴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위가 아니었지만 대처에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 당일 오전 9시 30분쯤 해경 헬기와 함정이 도착해 소음이 심했음에도 강씨는 승객들을 방치하다 10시쯤에야 밖으로 뛰어내리라는 방송을 내보냈지만 이미 배가 80∼90도 기울어져 탈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 승무원은 “강씨는 성실했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원칙을 지켰어야 할 선원들이 유유히 탈출한 뒤 식사 대접까지 받는 순간, ‘배운 대로’ 행동한 학생들은 차디찬 바닷속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 누구를 탓했을까.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2014-05-1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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