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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그래도 모두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래도 모두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4-05-03 00:00
업데이트 2014-05-0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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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논설위원
TV 화면에 세월호 선원들이 비칠 때마다 분노가 치솟았다. 저런 인간들과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 승객을 버린 선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이건 운 나쁘게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범인이 뚜렷이 존재하는 사건이다. 사건 직후의 급성 속병은 만성 속병으로 뱃속에 똬리를 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얼굴을 본 적도 없지만, 사돈의 팔촌쯤 되는 친척 가운데 여객선 안전과 관련된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일하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닌 인천이라고 했다. 자세히 알아본 것도 아니니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물론 아무 관련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우리 집안 사람들의 기류는 조금 달라졌다. 도주 선원들을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켕기는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세월호 사건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친척의 등장으로 ‘너’만의 사건이 아니라 ‘나’와도 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는 사건이 된 것이다. 하긴 해운업계와 감독관청이 모두 연관된 초대형 게이트다. 돌아가는 사정을 종합해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선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면, 고깃배의 어부를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 판국이다. 해양경찰청에서 군복무를 하는 아들을 둔 부모조차 마음이 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섯 사람만 거치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여섯 사람은 고사하고 서너 사람만 거쳐도 어디에 사는 누구든 모를 수가 없는 것이 우리 사회다. 생각지도 않게 우리 집 사돈의 팔촌이 세월호 사건과 직간접으로 연관이 없지 않을 가능성이 드러난 것처럼,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사돈의 팔촌 가운데 한 사람이나 친구의 친구는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떤 지독한 욕설을 들어도 싼 사람들이다. 세월호 참사 이상의 꼴을 직접 당하게 해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일종의 복수심을 표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분명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응당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사회정의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우리는 아직도 이런 무지막지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제대로 단죄할 수 있는 법률조차 갖추지 못한 듯하다. 2012년 좌초된 유람선을 버리고 달아나 승객 32명을 숨지게 한 콩코르디아호 선장에게 이탈리아 법원은 징역 2687년을 선고했다지 않는가. 미비한 법률 때문에 세월호 책임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다면 희생자 유가족은 다시 한번 나라를 원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률의 부실함이 이런 지경이니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형편없는 데가 어디 해운 분야뿐이겠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나부터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을 목청껏 비난하지만, 그래서 네가 일하는 분야는 반석 위에 지은 철옹성처럼 튼튼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침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떳떳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자기 분야에서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세월호 한 척씩을 망망대해에 띄워 놓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요행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우리 사회가 바뀌려면 내가 먼저 바뀌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 역시 또 다른 세월호 참사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철저하지 못했던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려는 움직임이 적지않다. 세월호 참사도 결국 너를 꾸짖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라는 자각이 싹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것을 잃은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에게는 정말 미안할 말이지만 참사로 우리 사회가 모든 것을 잃지는 않은 것 같다.

dcsuh@seoul.co.kr
2014-05-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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