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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오보카타와 황우석/김민희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오보카타와 황우석/김민희 도쿄특파원

입력 2014-04-12 00:00
업데이트 2014-04-12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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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도쿄 특파원
김민희 도쿄 특파원
아이러니하게도,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전문성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과학이다. 과학을 잘 모르는 대중은 특정한 이미지가 부과되지 않으면 과학자의 전문성을 알아보지 못한다. 가령 세계적인 연구를 선도했다든가, 외모가 수려하다든가, 대중을 사로잡는 언변이 있다든가 하는 경우다. 이렇게 과학자에게 오라가 입혀지면 엄청난 폭발력을 갖는다. 한국에서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그랬다. 나중에는 가짜로 판명됐지만 화려한 업적과 이미지에 힘입어 그는 과학자를 넘어 영웅이 됐었다.

새로운 만능세포인 ‘STAP세포’ 논문 날조 의혹에 휩싸인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오보카타 하루코 연구주임의 지난 9일 기자회견을 TV로 지켜보면서 ‘황우석 광풍’을 떠올렸다. 그때의 한국처럼 일본도 ‘노벨상을 노려볼 만한 세계적인 업적’과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여성 과학자’에 열광했다.

일본에 있는 특파원들은 이 사건을 ‘일본판 황우석 사태’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 황 전 교수와 오보카타 주임 사건에는 다른 점이 있다. 전자는 50대 남성(사건 당시), 후자는 30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황 전 교수와 달리 오보카타 주임은 ‘미모의 젊은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사회에서 얼마나 간편하게 소비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잘나갈 때는 그 타이틀이 대단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엄청난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오보카타 주임이 2년차에 불과한 예쁘고 어린 여성 과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논문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전제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이 시점에서 당사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젊고 예쁜 여자’ 이미지에 편승할 것이냐, 아니면 저항할 것이냐다. 오보카타 주임은 전자를 택했다. 실험실을 핑크색으로 꾸미는가 하면 실험복 대신 할머니가 물려주셨다는 일본식 앞치마를 입고 실험하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논란이 일기 전까지 그는 ‘리케조’(이공계에 종사하는 여성)의 아이돌로 군림했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그는 이 전략을 고수했다. 눈물이 고인 촉촉한 눈망울에 떨리는 입술로 “STAP세포는 확인된 진실이다. 200차례 이상 제작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모습은 대중의 동정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또 그는 “(조작의) 악의를 갖고 논문을 쓴 것은 아니다. 논문이 불충분한 것은 내 부주의와 공부 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STAP세포 논문 논란에서 악의와 선의는 중요하지 않다. 정당한 과정을 거쳐 제대로 된 결과가 나왔느냐가 중요하다. 그게 프로의 세계다. 그 회견에서 오보카타 주임은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STAP세포 제작 증거를 결국 제시하지 않았다. 젊고 예쁜 여성 과학자라는 프레임 안에 자신을 집어넣은 한계가 거기서 드러났다.

STAP세포를 둘러싼 논란은 진행 중이다. 오보카타 주임이 논문을 조작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를 제외하고 편성된 이화학연구소의 재현 실험팀이 어떤 결과를 갖고 나올 것인지가 현재 초미의 관심사다. 한때 일본 과학계의 혜성이었던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큰 실망이겠지만 나는 오보카타 주임의 기자회견을 보며 이미 실망했다. 쉽고 화려한 길을 가려 했던 과학자가 그다지 미더워 보이지는 않는다.

haru@seoul.co.kr
2014-04-1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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