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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옷 벗기고 강제로…그는 악마였다”

“남편이 옷 벗기고 강제로…그는 악마였다”

입력 2014-02-28 00:00
업데이트 2014-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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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결혼이주여성 3명중 2명은 가정폭력 경험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A(21)씨는 2년 전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오토바이 배달업을 하던 표모(39)씨를 만나 결혼했다. 둘 사이에 아들까지 생겼지만 남편의 폭력은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A씨는 지난해 12월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 표씨는 지난 26일 이혼 문제를 상의하자며 A씨를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이혼 얘기는커녕 술만 들이켜던 표씨는 A씨가 술을 그만 마시라며 말리자 돌변했다. A씨의 왼쪽 눈 핏줄이 터지도록 주먹을 휘둘렀고,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 휘두르면서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자신의 무릎을 식칼로 1㎝가량 찌르는 등 자해까지 했다. 겁에 질린 A씨는 울먹이며 맨발로 뛰쳐나와 “도와 달라”며 행인을 붙잡았다. 식칼을 든 남편이 쫓아올까 두려워 신발 챙길 겨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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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경찰서는 27일 별거 중인 아내 A씨를 폭행하고 식칼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표씨를 특수강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집을 나온 이후로도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틀어쥔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1살 된 아들이 있지만, 남편이 갓난아기까지 자꾸 때리는 통에 지난해 친정엄마가 아이를 필리핀으로 데려간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부부갈등·이혼문제로 센터에 상담을 요청한 이주여성의 숫자는 2000여명에 이른다. 3년마다 실시하는 여성가족부 가정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0년 국내 결혼 이주여성 3명 중 2명은 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부는 2013년에도 가정폭력 실태 조사를 수행했지만 이주여성 통계 표본 수가 301명으로 적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이처럼 국제결혼을 둘러싼 피해가 속출하자 이달 초 법무부는 오는 4월부터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혹은 그 수준에 있는 한국 남성이 외국인 배우자의 결혼 이민 비자를 신청하면 비자를 주지 않고 결혼이민(F6) 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고시했다.

또한 한국인과 결혼하는 외국인 배우자들은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초급을 취득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 남녀가 단기간에 혼인하는 국제결혼 문화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인과의 결혼을 국내 입국 목적으로 악용하는 사건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염 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일부 남성들은 비용을 치르고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이주여성을 상품으로 대하고 폭력을 휘두른다”면서 “이주여성을 돕는 기관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신체폭력에 한해 가정폭력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언어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법 제도와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주여성들은 폭력을 당하면 집을 나와 버리는 경우가 많아 당국이 파악하지 못한 피해 여성 숫자는 훨씬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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