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에 조직을 밀고한 전직 보스 프레드(로버트 드니로)는 CIA의 배려로 정체를 숨긴 채 가족과 함께 이곳저곳 떠돌아다닌다.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정착하는 듯했지만 욱하는 성질을 못 죽여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친다. 그의 가족도 한 성격 하기는 마찬가지. 아내 매기(미셸 파이퍼)는 동네 슈퍼에 갔다가 자신의 험담을 하는 주인과 손님들을 폭탄으로 ‘응징’한다. 딸 벨(다이아나 애그론)은 치근덕대는 남자아이들을 테니스 라켓으로 후려치고, 아들 워렌(존 드리오)은 자신을 때린 불량 학생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학교 친구들을 포섭한다. 증인인 이들 가족에 대한 보호를 맡은 CIA 요원 스탠스 필드(토미 리 존스)의 얼굴에는 주름살만 깊어진다.
하지만 ‘퇴물’ 보스 프레드의 좌충우돌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체를 숨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누지 못해 타자기와 씨름하며 자신의 회고록을 써낸다. 이미 정원 구석에 시체 한 구를 파묻은 마당에 주변 사람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 프레드와 10년을 동고동락한 스탠스가 옥신각신하는 대목은 일품이다. ‘대부2’, ‘좋은 친구들’ 등으로 묵직한 연기를 선보여 온 로버트 드니로와 ‘맨 인 블랙’ 시리즈에서 요원 이미지를 굳힌 토미 리 존스는 기존 작품에서의 카리스마를 묘하게 비튼다.
하지만 조용히 숨어 살아야 하는 가족의 행보는 그 이상으로 통쾌해지긴 어렵다. 이들이 발 딛고 있는 곳은 범죄 조직의 세계가 아닌 시골 마을이고, 복수의 대상 역시 악당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인 탓이다. 블랙코미디를 표방하지만 다소 잔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액션물에서 으레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짜릿한 장면도 영화 중반 이후라야 만날 수 있다. 또 매기와 벨 등 여성 캐릭터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부드럽게만 다듬어지는 부분도 아쉽다. 가족의 악행을 대신 반성하고 사랑에 눈을 뜨며 덜 ‘위험해’지는 것. 다혈질 보스의 가족과 평범한 여성의 두 얼굴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미셸 파이퍼와 다이아나 애그론의 연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22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