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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칼럼] 걱정되는 검찰의 중립

[손성진 칼럼] 걱정되는 검찰의 중립

입력 2013-08-08 00:00
업데이트 2013-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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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정도(正道)를 따르지 못하는 검찰 식구들이 있다면 그들이 가장 중요한 대상이고 정치세력을 좇는 검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2월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제일 중요한 검찰개혁의 대상은 무엇인가”라는 한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두 달 후 채동욱 검찰총장 후보자는 인사 청문회에서 “저를 비롯한 모든 검찰 구성원들이 정치적 중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원칙과 정도를 굳건히 지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각오와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때와는 달라 보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새 대통령이나 정치권, 검찰이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는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이 들어 있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독립성 보장이다. 여야 의원들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그동안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검찰을 비판하면서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등 검찰 개혁안을 추진할 의지가 있느냐고 검찰총장 후보자를 몰아붙였다. 이에 검찰도 32년의 역사를 가진 중수부를 폐지하고 검찰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중립을 보장할 후속 방안들을 모색하며 화답했다. 국회도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검찰의 중립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일관되게 진행된 움직임에 하루아침에 실망과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은 이번 청와대 인사 과정을 보고서다. 우선 비서실장에 임명된 검찰총장 출신 김기춘씨는 검찰의 중립을 스스로 해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총장을 마치고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한 후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대선 대책회의를 연 ‘초원복집 사건’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미스터 법질서’로 불리며 원칙 있는 검찰권 행사를 강조했던 그는 이 사건으로 ‘정치 검사’의 오명을 쓰고 결국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황 장관과 채 총장은 김 신임 실장을 비롯해 검사 출신으로 정부 핵심에 진출한 선배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인 모양새다. 김 실장이 검찰총장으로 있을 때 황 장관은 서울지검 공안2부 평검사, 채 총장은 같은 지검 특수2부 평검사였다. 청와대와 법무부·검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자리가 민정수석이다. 검찰권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이 심했던 1990년대에도 검사 출신 민정·사정수석은 총장의 고시 한두 기 아래 또는 그보다 더 아래의 후배를 앉힌 것이 관례였다. 신임 홍경식 민정수석은 사법시험 기수로 볼 때 황 장관보다는 5기, 채 총장보다는 6기 선배다. 대선배인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대해야 하는 장관과 총장은 과장해서 표현하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교체된 이유에 대해 검찰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쪽에서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검찰의 중립 방안을 논의하면서 또 다른 쪽에서는 검찰을 장악해야 하는 민정수석의 역할론을 운운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곽 전 수석도 검찰을 아예 놓아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곽 전 수석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에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두 달 전이다. 검찰의 중립을 해쳐가며 그도 할 만큼 했지만, 여권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했던 듯하다.

국정원 수사와 관련해 여권에서 ‘통제되지 않는 채동욱’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검찰 주요 간부에 대한 인사조치를 통해 채 총장에게 경고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설도 있다. 사실이라면 검찰의 중립을 대놓고 해치겠다는 발상이다. 몇 달 전만 해도 검찰에 중립을 주문하고 개혁을 외치지 않았던가. 마음에도 없던 말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참으로 겉 다르고 속 다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실현될 날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진정성 없는 외침을 듣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난다.

sonsj@seoul.co.kr

2013-08-0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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