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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금속활자·활판인쇄 현장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금속활자·활판인쇄 현장을 가다

입력 2013-07-22 00:00
업데이트 201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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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에 새겨 황토에 굽다… 1377년 ‘직지’처럼

보존 방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인 울산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 한반도 주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최초의 역사그림책’이다.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최초에 사용한 방법은 암석이나 동물의 뼈 등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은 문자의 기원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책자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다. 의사전달과 보존을 위한 표현 방법이라는 점에서 ‘인쇄의 기원’으로도 볼 수 있다. 이후 막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등장한 인쇄술은 인류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직지 금속활자의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직지 하권을 마무리한 후 상권 37장(목판본 기준) 가운데 7장을 복원할 계획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직지 금속활자의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직지 하권을 마무리한 후 상권 37장(목판본 기준) 가운데 7장을 복원할 계획이다.
밀랍에 붙은 자본을 조각칼로 새긴 어미자 가지.
밀랍에 붙은 자본을 조각칼로 새긴 어미자 가지.
황토에 쌓인 활자 가지쇠 분리하기.
황토에 쌓인 활자 가지쇠 분리하기.
손질된 글자를 주형틀 안에 배치하기.
손질된 글자를 주형틀 안에 배치하기.
밀랍에 새겨진 어미자.
밀랍에 새겨진 어미자.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 이를 실용화했다. 고려시대인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불교 서적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이하 직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

현재 충북 괴산군 연풍면 무설조각실에서는 직지를 인쇄했던 금속활자를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101호인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직지 금속활자 복원을 책임지고 있다. 옛 방식 그대로, 밀랍에 새겨진 글자를 파내고, 황토에 싸서 구운 뒤 쇳물을 부어 활자를 완성한다. 무엇보다 쇳물을 주형에 붓는 타이밍이 적절해야 활자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임 활자장은 “어느 한 공정이라도 방심하면 원하는 높은 수준의 작품을 얻을 수 없다”며 “질 좋은 밀랍을 얻으려고 작업실 주변에서 아예 토종벌을 직접 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직지 하권을 마무리한 뒤 상권 37장(목판본 기준) 가운데 7장을 복원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의 고인쇄 문화를 보다 실증적으로 밝혀내서 그 위상을 한 차원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주조술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경기 파주출판단지의 ‘활판공방’은 금속활자의 명맥을 계승한 국내 유일의 납 활자 인쇄공장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여느 인쇄소와는 사뭇 다르다. “철커덕 철커덕….” 50년은 훌쩍 넘은 듯한 낡은 주조기가 쉼 없이 돌아간다. 그 흔해 빠진 컴퓨터 한 대 보이지 않는다. 조판을 걸어 둔 활판 인쇄기에서 나는 비릿한 윤활유와 잉크 냄새가 뒤섞여 콧속이 얼얼했다. 백열등 아래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령의 숙련된 기술자가 코끝에 걸친 안경 너머로 한 손에 쥔 문서를 봐가며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빼곡히 꽂힌 납 활자를 하나하나 뽑고 있다. 마치 1960, 70년대 조판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했다.

활판공방의 문선공들이 문서를 쥔 채 납 활자가 박힌 선반을 오가며 필요한 활자를 골라내고 있다. 모든 공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활판공방의 문선공들이 문서를 쥔 채 납 활자가 박힌 선반을 오가며 필요한 활자를 골라내고 있다. 모든 공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작은 활자들을 집어 조판작업을 하고 있다.
작은 활자들을 집어 조판작업을 하고 있다.
인쇄를 하기 위한 활판 고정작업.
인쇄를 하기 위한 활판 고정작업.
문선, 조판의 과정을 거친 활판에 인쇄되는 시집.
문선, 조판의 과정을 거친 활판에 인쇄되는 시집.
활판윤전 인쇄기에 걸기 위해 반원형으로 뜬 원연판.
활판윤전 인쇄기에 걸기 위해 반원형으로 뜬 원연판.
활판공방은 2007년 박건한(72) 활판공방 편집주간과 박한수(46) 시월출판사 대표 등 ‘활자문화 지킴이’들의 노력으로 문을 열었다. 활판인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전국을 떠돌며 인쇄기를 어렵게 구하고 기술자들도 수소문한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박건한 편집주간은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가마솥밥 같은 ‘따끈따끈한 책’을 만든다”고 말했다. 명품에는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듯 활판인쇄의 모든 과정은 수작업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기계가 못 하는 섬세한 작업은 사람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다. 박한수 대표는 “금속활자 종주국의 전통을 계승하여 장인의 맥을 잇고 싶다”며 옛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금속활자를 쓰는 활판 인쇄술의 발명은 인간사의 혁명이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인류문명을 발달시킨 위대한 결정체이다. 따라서 활판 인쇄의 부활은 우리 문화의 진수를 확인하는 일이자 활자 종주국의 자긍심을 지키는 일이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2013-07-2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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