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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우리가 모르는 우리/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우리가 모르는 우리/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13-07-20 00:00
업데이트 2013-07-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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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나 여객기 착륙사고를 한창 취재하고 있을 때 평소 알고 지내는 워싱턴의 미국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의 질문으로 시작된 통화내용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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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정치부 차장
김상연 정치부 차장
“사람 목숨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아나항공 보도자료를 보니까 1등석에 몇 명, 2등석에 몇 명, 3등석에 몇 명이 타고 있었다는 식으로 적혀 있어서요.”

“그게 어때서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자세하게 알려주려는 취지일 텐데….”

“그런 사실이 왜 궁금하죠? 그게 사건의 진상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

처음엔 별것도 아닌 것 같고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주고받을수록 반박할 논리가 궁색해졌다. 사고 직후 나온 아시아나항공의 첫 보도자료를 들여다 보니 ‘비즈니스클래스 19명, 일반석 272명’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미국 기자와의 통화 내용을 이틀 뒤 취재차 만난 실리콘밸리의 한 한국계 기업인에게 들려줬더니 그는 이런 해석을 내놨다. “솔직히 말해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1등석 승객보다 3등석 승객이 더 많은 피해를 보면 억울해하고, 1등석 승객이 더 많이 다치면 고소해하는 심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의 직설적 화법에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지만, 역시 딱히 반박할 논리를 찾기 힘들었다. 어쩌면 밖에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우리가 우리를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한 것은 아닐까.

한국 기자들은 경찰서에서 밤을 지새우는 수습기자 시절부터 ‘디테일’에 대해 엄한 교육을 받는다. 디테일을 챙기지 못하면 선배 기자로부터 육두문자가 섞인 불호령이 떨어진다. 살인사건에 사용된 흉기의 손잡이가 몇 센티미터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가 혼쭐이 난 수습기자도 있다.

이런 디테일과 육하원칙으로 단련된 한국 기자의 눈에 미국 언론 보도는 때로 엉성해 보인다. 예컨대 유력 언론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 뉴스메이커의 발언 날짜나 장소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미국 기자에게 물어봤더니 “요즘 미국 언론은 사안의 핵심과 동떨어진 불필요한 사실(팩트)을 기사에서 생략하는 추세”라고 했다.

아시아나가 그런 보도자료를 만든 건 디테일로 무장한 한국 기자들의 평소 질문 스타일에 길들어져서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디테일을 생명줄처럼 여긴다 해도 사고 비행기의 인원을 좌석 등급별로 궁금해하고 보도해야 하는지는 고민해 봤으면 한다.

몇 년 전 듀크대 정치학 전공 학생에게 전공 교수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몹시 궁금했던 그 부분에 대해 그 학생은 “모른다. 별로 관심없다”고 시큰둥하게 답해서 속으로 뜨끔했던 기억이 있다.

인간을 등급화하는 인간은 열등감과 우월감의 반복적 사이클 속에서 끝없이 조울증에 시달린다. 흑인을 멸시하는 한국인은 백인 앞에서 비굴해지고 동남아에서 우쭐대는 한국인은 미국에서 주눅든다.

인간을 등급화하는 한국 언론의 3류 기질은 이제 뉴스 앵커가 “아시아나 사고 사망자 2명이 모두 중국인으로 확인됐다. 우리로서는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carlos@seoul.co.kr

2013-07-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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