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최여경 정책뉴스부 차장

입력 : ㅣ 수정 : 2013-06-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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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경 정책뉴스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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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여경 정책뉴스부 차장

“오늘은 이 동네 곳곳이 제삿날이요. 이놈의 봄만 되면 미쳐 불겄어. 봄이, 봄이 아니라 겨울이요. 맴이 휑~혀요.“

대학로에서 한창 공연 중인 연극 ‘짬뽕’의 대사 일부다. 연극의 배경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있는 한 중국집이다. 연극은 정치 권력이나 이념과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아주 사소한 일로 민중항쟁에 엮이는 과정을 그리면서 한국현대사의 한 장면을 형상화했다. 자잘한 재미로 관객을 웃겨주던 연극은 막바지에 이 대사 한방으로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100명이 채 되지 않는 관객들은 나이와 성별을 떠나 눈물을 떨군다. 친구를 잃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향한 공감이다.

2일 막을 내린 연극 ‘푸르른 날에’도 이때만 되면 봐야 하는 공연으로 꼽힌다. ‘광주의 그날’을 살았던 연인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순간까지 어떻게 ‘살아내야’ 했는지를 이야기한다. 과장된 몸짓과 유머로 애틋한 감정을 풀고, 그날의 시대정신을 녹여낸다. 키득거리면서 공연을 즐기던 관객의 감정선은 극 후반, 송창식의 ‘푸르른 날’이 흘러나올 때 쓰린 아픔으로 옮겨간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서정주 시인의 시구는 “비극의 역사를 감내한 우리는,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외침으로 다가온다.

두 작품 안에서 관객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공유한다. 물론 작품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5·18이라는 비극의 현대사를 익히 잘 알고 있기에 ‘그날’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5월이 되면 ‘그날’을 기억한다. 피와 살로 일군 민주주의 정신과 의미를 곱씹는다. 지난 5월은 그 치열함이 되살아난 듯했다.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행태가 나타나면서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분노했다. 그 5월이 가고 6월을 맞았지만, 진실을 향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다시 역사 논쟁이 들끓는다. 5월의 확장판이다.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역사 교과서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심의위원회 본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이다.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가 조선 근대화에 기여하고, 5·16군사정변으로 근대화 혁명이 시작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5·18은 단순 민간 폭동으로, 제주 4·3사건은 좌파 세력에 대한 반란으로 기술하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서슬 퍼런 독재의 역사가 혁명과 산업화로 치환되려는 모양새다.

다양성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역사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는 조심스러워진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실 그 자체를 기술해야 한다. 학자들이 사관(史觀)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조차도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더욱이 ‘그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지금, 그 사실을 다르게 바라볼 수는 없다. 우리 역사는 늘 공격을 받아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식민사관이 깊이 자리 잡았다. 주변국에서는 우리 민족사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안에서 역사 뒤집기에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을 지키면서 역사를 바로 세울 때다.

피 흘리고 살을 뜯기면서 우리를 지켜낸 역사가 있는 6월이다. 한반도가 둘로 쪼개진 아픔을 품은 6월, 역사인식마저 쪼개져서는 안 된다. 문득 신채호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kid@seoul.co.kr

2013-06-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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