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도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걸까. 장기 집권하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섭외 1순위로 꼽히는 이병헌(43), 장동건(41)은 각각 올해로 데뷔 23년, 22년차다. 송승헌(37), 권상우(37), 원빈(36), 소지섭(36) 등도 데뷔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톱스타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7번방의 선물’의 류승룡을 필두로 ‘신세계’의 황정민, ‘파파로티’의 한석규, ‘설국열차’의 송강호 등 40대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 됐다.

나이가 들수록 숙성되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대 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특정 스타들에게만 작품이 쏠리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 특히 새 얼굴들이 공급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업계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안방극장에서 신인 배우와 톱스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 것은 공채 탤런트 제도가 사라지고 드라마의 외주 제작이 늘어나면서부터다. 톱스타를 섭외해야 방송사 편성에 유리한 외주 제작사들은 거액을 들여서라도 유명 배우들을 기용하려고 하고 그 비용은 간접광고(PPL)를 통해 충당하는 것이 일종의 철칙이 됐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이병헌, 장동건도 생짜 신인이었지만 KBS와 MBC의 공채 탤런트였기 때문에 과감히 주연에 기용됐고 톱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요즘 투자나 편성을 고려하지 않고 연기력만 따져 신인을 기용하는 대담한 PD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래 가장 걸출한 신인으로 꼽히는 김수현과 수지가 탄생한 것도 소속사들의 합작법인이 드라마 ‘드림하이’의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 신인을 기용하지 않는 이유는 더욱 명확하다. 사전에 제작비를 투자받고 수익을 내야 하는 상업 영화의 특성상 검증된 배우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국내 대형 영화 배급사의 관계자는 “드라마는 주연 배우의 연기력이 떨어지면 역할을 축소하거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보완하는 임기응변이라도 할 수 있지만 영화는 100% 사전 제작제이기 때문에 배우 캐스팅에 보수적이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10~20대 신인 배우들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 제작자의 의지와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은 곽도원, 김성균, 조진웅 등 실력파 신인들을 대거 기용해 충무로에 ‘젊은‘ 피’를 조달했고 영화계의 ‘마이다스의 손’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건축학개론’을 통해 조정석을 발굴했다. 현재 ‘전설의 주먹’으로 한국 영화의 체면을 지키고 있는 강우석 감독도 신인 발굴에 적극적이다. 그가 ‘강철중:공공의 적 1-1’에 출연시킨 김남길, 이민호는 한류스타로 성장했고 엄태웅도 배우로서의 가능성만 보고 ‘실미도’에 캐스팅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황정민, 유준상, 윤제문의 아역으로 출연한 신인배우 박정민, 구원, 박두식은 영화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강 감독은 아이돌 스타들을 캐스팅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이돌을 영화에 썼을때 사람들은 가수가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가에만 관심이 있다”면서 “배우에 목숨을 건 친구들은 연기의 차원이 다르기도 하고 좋은 신인을 발굴하는 것은 감독으로서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 한류 스타들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는 1억원 수준까지 올라섰다. A급 스타들의 영화 편당 출연료는 5억~6억원을 호가한다. 그러는 사이 시청자는 보기 싫은 PPL 광고를 봐야하고 영화 투자사들의 의욕은 점점 떨어진다. 이제는 상업성만 고려한 안이한 제작 패턴보다 좋은 배우들을 발굴하고 작품의 질을 높여 산업의 파이를 늘리는 건강한 제작 방식이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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