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樂山樂水] 창조를 자극하는 시련

입력 : ㅣ 수정 : 2013-05-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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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잔인한 달, 사월이 지나고 오월이 왔다. 며칠 후면 국보 1호, 숭례문이 복구를 끝내고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온단다.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여 무참히 무너져 내리던 5년 전의 그 광경은 우리 모두에게 큰 상실의 고통처럼 느껴졌었다. 그 고통을 넘어 다시 부활하는 숭례문을 되새기며, 문득 ‘고독해방 심리학’의 저자인 스위스 정신의학자 폴 투니에의 말이 떠오른다. ‘창조적 고난’이라고. 모종의 상실이 인간의 창조성을 자극하여 건설적인 변화를 낳게 하고, 고난과 고통이 바로 성숙과 발전의 기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해 성숙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쇠락하는가? 그 원인은 개인의 운명이나 유전적 성향에 있다기보다 이들이 외부의 제도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향에 크게 좌우된다. 건설적인 영향은 기왕의 고난을 성숙의 열매로 변화시킬 수 있지만, 파괴적인 영향은 그 고난의 상처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게 한다.

비교적 단순하게 보이는 이 논리를 우리는 국가나 사회제도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왜 형벌제도를 통해 어떤 사람은 변화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재범·누범의 굴레 속에 갇혀 살게 되는가. 어떤 사람은 형벌이라는 고통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사회와 화해하는 자리로 나아가는데, 다른 사람은 동일한 과정 속에서 미움과 분노, 절망의 반응을 보이는가.

더 나아가 우리는 이 논리를 학문의 세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진리를 탐구하는 치열한 학문의 세계에도 실패와 좌절의 위험은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성공의 열매를 맛보지만, 다른 이들은 실패의 고배를 마시기도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연구자들은 거듭된 실패를 거쳐 새로운 가설이 진리라는 최종 단계에 이르러 간다. 거듭된 실험에서 쓰라린 실패를 반복하는 연구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가슴 저리는 아픔이 될지 우리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원천기술과 같은 세계 초일류를 다투는 연구 분야에서 막대한 연구비 투여와 세간의 집중된 시선을 감안하면, 고독한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실패가 얼마나 힘든 고통이 될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린 채, 우리는 어느새 세상사에서 불패 신화, 성공 신화에 길들여져 왔다. 창조적 실패를 자극하는 선한 영향력을 지닌 인적·제도적 장치를 우리는 아직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문적 속임수나 표절 같은 일탈 행위가 잦아들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대학도, 정부도 이제는 연구자들에게 실패의 정직한 보고자가 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오늘 한 사람의 실패가 밑거름이 되어 내일 다른 성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학문적 연구시장에 축적된 정직하고 양심적인 실패보고서는 성공한 연구성과 못지않게 내일의 값진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긴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외롭고, 치열한 정신적 씨름을 하는 이 땅의 연구자들이 당장의 연구 결실에 연연하기보다 연구 과정에 충실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아우르는 풍요로운 지적 시장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다.

마침 새 정부 들어 창조경제 논의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창조경제의 지평에 안착하려면 먼저 한 번의 실패를 값진 창조의 밑거름으로 삼고 도약할 수 있는 관심과 배려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미당(未堂 )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고, 시인은 잠 못 이루는 고뇌의 시간들을 보탰다고 한다.

국화꽃 같은 한 송이의 연구 결실을 거두기 위해 지금 우리는 고독한 연구자들의 곁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연구자들에게 희망의 나라를 열어 주어야 하겠고, 경계를 뛰어넘어 그들의 상상력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부처 이기주의의 칸막이도 거둬들여야 한다.

2013-05-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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