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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장관들, 국가인재DB 더 자주 열어라/정기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장관들, 국가인재DB 더 자주 열어라/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03-30 00:00
업데이트 2013-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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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홍 논설위원
정기홍 논설위원
관가에 ‘1급 공무원’ 인사철이 다가왔다. 어느 때보다 새 정부의 장차관 인선 과정이 험난해 낙마한 사례가 많았던 터여서, 후속 ‘1급 실장’ 인사와 관련한 뒷담화가 무성하다. 지금은 고위공무원단(1~3급)에 들어가 1급이란 직급이 없어지고 주로 실장이란 직책으로 불리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공직의 꽃’으로 불리며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자리에 앉은 이들이 아닌가. 부처의 실장급 자리가 모두 290개 정도니, 이 자리를 차고 앉으려는 기세가 ‘장강(長江)의 뒷물결’만큼이나 드센 요즘이다.

바야흐로 실장의 수난시대다. 머지않아 이들 중 상당수가 옷을 벗는 장면을 낯설지 않게 만날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중용됐던 이들은 교체대상 1순위임은 분명해 보인다. 승진의 길이었던 차관 인사에 끼지 못했으니 후속 인사에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다. 요새는 ‘고위공무원=산하단체장’이란 공식도 깨져 산하 기관장 자리를 차지하기도 녹록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무원 ‘전관예우’ 문제가 온 나라를 들쑤셔 놨으니 기댈 바깥 자리도 마땅치 않다. 가슴속에 지닌 사표를 수백 번이나 만지작거려 벌써 누더기처럼 됐을 법도 하다.

미국의 철학자인 존 듀이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라고 말했다. 중국 전국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소개한 전국책에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따른다’는 뜻의 ‘백락일고’(伯一顧)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지금 이 시간, 대다수의 실장들은 이런 심정을 갖고 싶을 것이다. ‘남자는 자기를 인정하는 이에게 충성하고, 여자는 연인을 위해 분을 바른다’는 요즘 유행어와도 잘 들어맞는 말일 게다.

인사를 앞둔 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지만, 사석에서 듣는 낙담(落膽)은 말할 수 없이 커 보였다. 한 실장은 “어느 국장은 정권 실세의 백이 있고, 어느 실장은 학교 줄을 잡고 있다”라는, 자신의 앞길과 동떨어진 말을 듣는 게 가장 거북스럽다고 했다. 여러 뒷담화의 이면엔 상대 대선 캠프에 들락거렸다느니 하는 마타도어도 판을 친단다. 다른 이는 “지난 정부 때 한 공직자에 대한 3000건에 가까운 투서가 청와대에 들어갔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고 말했다. 정권 코드에 잘 맞추면 2~3년은 쉬이 가는데 누가 ‘마당발’을 마다할까도 싶다.

‘1급 실장’의 인사 애환은 공직의 씨줄과 날줄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그 자리를 백지 위임했던, 살벌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들은 후배들이 지난 정부의 후반기에 접어들자 차기 정부를 기대하며 일에서 한 발씩을 빼던 행태도 똑똑히 보아온 터다. 자신들도 그랬으니까. 때를 놓치면 이전 정부의 사람으로 찍힌다는 것을 ‘영리한’ 후배 공무원들이 모를 리 없다. 윤은기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은 이런 행태를 정권 후반기만 되면 동면(冬眠)을 하는 ‘반달곰 체질’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공직사회는 이 같은 정치 공무원을 용인한 지 오래됐다. 정치권에 줄을 대는 공무원을 엄벌하겠다는 엄포는 십수년 전부터 자취를 감춘 상태다. ‘영혼이 없는’ 공직자는 이렇게 생산됐다.

“국정철학에 맞는 공무원을 쓰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연일 귓전에 와 닿는다. 대통령의 언급처럼, 조만간 부처에는 새로운 실장 체제가 들어선다. 새 정부에는 유독 공무원 출신의 장차관이 많이 포진해 있다. 실장 자리가 함지박만큼 크게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위 공무원들이 산하 기관장 자리를 기웃거리는 공직사회의 현실이 ‘국가가 인재를 쉽게 다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지만 말이다.

‘정치의 계절’이라 이들에 대한 뒷담화가 무성하지만, 그래도 다수 공무원은 그 어느 조직원보다 국가관을 잘 지키고 있을 게다. 모쪼록 장관들은 실장 후보자의 파일이 등록된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DB)’와 ‘고공단 DB’를 더 자주 열었으면 한다. 그것이 소통의 폭을 넓히는 일이자 인사 난맥상을 뛰어넘는 길이다.

hong@seoul.co.kr

2013-03-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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