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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카지노 사전심사제는 毒이다/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카지노 사전심사제는 毒이다/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3-03-20 00:00
업데이트 201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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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면 수석논설위원
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일에 쫓겨 놀이를 게을리하는 것은 놀이에 쫓겨 일을 소홀히 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아닐까. 영화 ‘철도원’의 원작자로도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가 던지는 이 도발적인 화두에 한 마디로 답하기는 쉽지 않다. 야쿠자와 어울리며 도박판을 떠돌고 ‘카지노’라는 기행서를 펴내기도 한 그로서는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을 법하다. 그에게 카지노는 희망과 절망이 소용돌이치는 인생의 축도다. 도박예찬론에 가까운 그런 유의 카지노관이 우리에게 과연 얼마나 통할까.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놀이의 역설이 담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태지만 평균적인 국민의 도덕적 감수성은 여전히 카지노를 ‘놀이’로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카지노를 산업으로 육성하느냐 도박으로 규제하느냐도 결국 이 같은 인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답이 안 보이는 문제일수록 공론화 절차가 중요하다.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카지노 정책은 ‘졸속’이다.

지난 정부 끝물에 밀어붙이다시피 해 도입한 카지노 사전심사제가 아니나 다를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카지노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장관은 지난주 “경제자유구역의 카지노 사전심사제는 외자 유치를 위한 것이지만 반드시 그 방법만 고수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도 있다는 말로 비친다. 카지노 사전심사제는 실물투자 없이 사업계획서 등 서류심사만으로 카지노업 허가를 얻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투자 위험부담을 줄여줘 경제자유구역 등에 외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진입장벽을 낮춘 것은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도박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미국 네바다주의 카지노법은 절차와 허가 요건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카지노 업체들은 이를 다 준수한다. 우리 경제자유구역법상의 카지노 허가 요건은 거기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이다. 손쉽게 카지노 허가를 따낸 뒤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론스타식 ‘먹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초 사업계획과 달라 허가를 취소하거나 규정을 보완할 경우 투자자국가소송(ISD)에 휘말릴 소지도 없지 않다.

‘도덕국가’ 싱가포르에서 배우라고들 한다. 카지노형 복합리조트가 싱가포르 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빛과 함께 어둠도 봐야 한다. 싱가포르는 지금 도박중독 등 사회적 부작용으로 인해 카지노 감독기구를 늘리고 내국인 출입제한을 위한 추가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타산지석이다. 외국 카지노 자본의 한국 시장 진출도 결국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는 ‘오픈 카지노’로 가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리조트 업체 MGM의 최고경영자는 한국 정부가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면 수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오픈 카지노가 미래의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카지노 심사는 더없이 엄정해야 한다. 실제 투자여력이 없는 부실기업이나 말만 번지르르한 투기성 자본이 흘러 들어오도록 멍석을 깔아준다면 어떤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겪을지 모른다. 진성 투자자를 가려내기 위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가 절실한 현실에서 노동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카지노산업 육성 자체에 반대할 국민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다. 투자유치에만 매달려 너도나도 카지노 자본을 끌어들이려 한다면 경제자유구역은 ‘카지노 자유구역’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거시적인 카지노 정책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 지속가능한 외국인 카지노를 세우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분도, 실리도 희미한 카지노 사전심사제는 재고돼야 마땅하다.

jmkim@seoul.co.kr

2013-03-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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