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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여성임원들의 세계] 女임원 설문 분석 해보니

[커버스토리-여성임원들의 세계] 女임원 설문 분석 해보니

입력 2013-02-16 00:00
업데이트 2013-02-1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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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그룹 여성 임원 고작 1%대…“家長 아닌데 승진 늦어도 돼” 차별에 눈물

“여성은 가장이 아니니 빨리 승진시킬 필요가 없다.”

“야근을 밥 먹듯 해야 일을 잘한다.”

국내 30대 기업의 여성 임원들이 경험했던 후진적인 기업 문화의 단면이다. 여성 임원들은 설문에서 그들이 겪었던 차별에 대한 경험을 생생히 털어놓았다. 육아제도, 인사평가, 조직문화 등에서 비합리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정부와 기업의 정책에 대해 개선을 요구했다. 지금보다 훨씬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폐쇄적인 기업 문화를 거치며 임원 자리에 오른 여성들은 수적 열세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였고, 그래서 현재의 위치를 더욱 값지게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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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신문이 파악한 30대 대기업 집단(그룹·공기업 제외)의 여성 임원 성적표는 초라했다. 삼성(1.7%), 현대차(0.5%), SK(1.6%), LG(1.9%) 등 재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4대 그룹 모두 여성 임원의 비율이 전체 임원의 1%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너 일가의 여성 임원을 다 합쳐도 1.5%를 넘지 않았다.

여성 임원 가운데 공채 출신은 10개 그룹 28명으로 전체의 0.3%에 불과했다. 삼성 9명, LG 6명, 한진 4명, 현대차·KT 각각 2명, 롯데·두산·신세계·동부·현대백화점이 각각 1명이다.

전체 임원 대비 여성 임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미국 자동차제조회사 제너럴모터스(GM) 그룹 소속의 한국지엠으로 150명의 임원 가운데 8.7%인 13명이 여성이었다. 이어 KT 7%(115명 중 8명), OCI 4%(50명 중 2명), 신세계 3.5%(113명 중 4명), CJ 3%(200명 중 6명) 등의 순이었다.

여성 임원의 수로만 본다면 삼성이 33명(전체 임원 2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LG 15명, 한국지엠 13명, SK 10명, KT 8명, 현대차·한화·두산·CJ가 각각 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김재문 LG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여성들이 공채로 거의 들어가지 못했고 뽑아도 육아문제 등이 겹쳐 핵심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가 드물어 역량을 인정받기도 어렵고 승진의 기회도 적었다”면서 “해외 기업들은 20년 전부터 능력 있는 여성 인재들을 많이 뽑아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다 보니 자연스레 외국 회사의 여성 임원이 많아진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임원들이 느끼는 기업 내 현실은 유리 천장 수준이 아니라 철벽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응한 30대 기업의 여성 임원 47명 가운데 95.7%는 ‘현재 기업의 여성 임원 수가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 중 ‘적정하지 않다’가 78.7%, ‘전혀 적정하지 않다’는 응답은 17%였다. ‘여성 임원 수가 적정하다’는 응답은 4.3%에 그쳤다.

여성 임원 10명 중 9명이 임원이 되기 힘들다고 밝힌 가운데 응답자(복수응답)의 90%가 그 이유로 ‘남성중심 문화’를 꼽았다. 육아문제 65%, 사회적 편견 50%, 조직융화 32.5%, 인사차별 25% 순이었다. ‘힘들지 않다’는 응답은 4.3%에 그쳤다.

여성 임원의 55.3%는 여성이 남성보다 임원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답변했다. 이유로는 역시 ‘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92.3%), ‘육아휴직 등 보육 갈등’(88.5%)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19.1%였다. 오래 걸리는 이유로는 ‘조직융화의 어려움’이 34.6%, ‘리더십 부족’이 26.9%였다. 학력 부족은 1명에 불과했다.

한 여성 임원은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와 인사 체계, 육아 현실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여성 인력들이 중도 포기하거나 경력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유통업계 한 임원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여성이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육아”라면서 “현 제도 아래서 경제적 여유나 가족의 지원 없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여성 임원(공채+경력)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20년 이상~24년 이하’가 38.3%로 가장 많았다. ‘15년 이상~19년 이하’가 31.9%, ‘10년 이상~14년 이하’ 근무자는 21.3%였다. 25년 이상 응답자는 2.1%였으며 10년 미만이란 응답자는 6.4%였다.

여성 임원들은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을 30%까지 의무적으로 확대하는 ‘여성 임원 의무 할당제’에 대해 제도적으로는 찬성(53.2%)하나 민간 기업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 “일시적으로 무리해서라도 남녀 임원 수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과반수는 민간 기업 적용에 반대하고, 남성들의 역차별 주장에도 공감했다. 인사 등에서 기회의 평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자격 미달 논란, 역차별 등 또 다른 모순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여성 임원은 “시대를 잘 타고난 여자라서 운 좋게 임원이 됐다는 식의 농담은 불쾌하다”면서 “수를 채우는 강제 할당제보다는 출산 및 육아 지원 등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정한 근무 여건과 인사 평가가 필요하며 남성 위주의 기업 문화 구조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여성 임원은 “여성으로서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정부와 기업은 여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산업부 종합

2013-02-1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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