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고 웃기고 유아 분장까지… 연기와 변신의 귀재 김슬기

2011년 말, 서울 대학로의 한 공연장에 오른 연극 ‘리턴 투 햄릿’(장진 연출)은 관객을 제대로 웃겨 줬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복수의 수단이 되는 ‘칼’을 소환해 당시 정황을 듣는 장면이 백미였다. “그때 이놈을 쑤씨삐자. 그라모 요놈 지옥 간다. …내는 더 몰라요. 아무리 궁금해도 으째 내한테 물어볼 발상을 다 하요, 참말로.” 5분 남짓 짤막한 등장이었지만 관객의 배꼽을 뺐다. 이 ‘칼’은, 이즈음 방송을 시작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SNL 코리아)에서 빨간옷을 입은 ‘또’로 분해 앙증맞은 욕쟁이로 변신했고(‘여의도텔레토비’), 진보 진영 정치인을 연기하면서(‘베이비시터 면접’) 닮은꼴 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다. “1 더하기 1은 귀요미~”를 부를 때는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데, 눈을 부라리며 웃을 때는 사악해보이기까지 한다. 노란모자를 쓴 유치원생 분장까지 잘 어울리는 이 스물 두 살 여인에게 사람들은 간절히 요청한다. “찰진 욕 한 번 해주세요.”

‘귀여운 욕쟁이’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김슬기는 “아직 보여드리지 않은 모습이 많다. 앞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br>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배우 김슬기(22)가 사람들 앞에 선 것은 1년 정도. 배우로서 존재감을 알리기에도 짧은 이 기간에 그는 ‘연기와 변신의 능력자’로 인정받았다.

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신문 본사에서 만난 김슬기는 “이 한 몸을 불사르리라는 마음으로 연기를 한다”면서 귀여운 얼굴에서 터져 나온 호탕한 웃음으로 허를 찔렀다. “물론 예쁘게 보이고 싶다. 그런데 예쁘게만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그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게 나의 강점이자 행운”이라고 했다.

시청자에게 김슬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능력자’이지만, 고향인 부산에서는 ‘될 성 부른 떡잎’으로 통했다. 초등학생 때는 발레를 배웠고, 중학생 때는 노래 대회를 휩쓸며 받은 경품을 집안 살림에 보탰다. 연기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관심을 가졌다. “춤, 노래, 연기를 다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뮤지컬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뮤지컬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막연하게 ‘세 개’를 다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죠.” 고3 때 학원에서 연기공부를 시작했고, 서울예술대 연기과에 뮤지컬 전공으로 입학했다.

대학 창작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가 올린 30주년 기념극 ‘로미오 지구 착륙기’(2011)에서 대학 선배이자 연출가인 장진 감독의 눈에 들며 ‘SNL 코리아’에 캐스팅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부대찌개를 뒤집어 쓰고(‘빽’), 가슴골을 드러내거나(‘신동엽의 골프 아카데미’), 마스카라 범벅된 얼굴로 노래하면서(박재범의 뮤직비디오) 연기혼을 불살랐다. 그가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기죽지 않고 연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는 가족같은 분위기 덕분”이라면서 ‘SNL 코리아’와 자신을 ‘동반성장 관계’라고 정의했다. “김원해, 김민교, 고경표, 박상우 등 동료들이 ‘남동생’처럼 잘 챙겨주고, 저처럼 까마득한 후배가 제안하는 아이디어도 기꺼이 받아줘요”라며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는 배려심 많은 도둑과 오지랖 넓은 집주인이 벌이는 코믹 소란극 ‘서툰 사람들’(장진 연출)에도 출연했다. “사랑하는 역할이 제일 하고 싶다”는 김슬기는 여주인공 유화이를 바로 그런 역할로 꼽았다. “귀엽고 독특한 캐릭터라 가장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꺼내 연기했다”는 그는 “극중이지만 매일매일 사랑을 하니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채워지는 느낌이라 오래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7개월 동안 유화이로 살았지만, 새달 재공연하는 ‘서툰 사람들’에는 출연을 망설이고 있다. 아직 신인인데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쉬면 뭐하나 싶으면서도 어딘가에 묶여 있으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솔직히 걱정도 되고요.”

나이가 어리다고, 경력이 짧다고 혹여라도 얕잡아 보면 큰 코 다친다. 2월부터 고정편성돼 방송하는 ‘SNL 코리아’에서 변화무쌍한 연기로 다시 한번 ‘김슬기’를 각인시킬 준비로 추울 틈도 없단다. “‘SNL 코리아’에서는 안 되는 게 없다”면서 깔깔대는 그는 “감사하게도 무대에서 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 작품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며 여운을 남겼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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