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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이러다 ‘경조(慶弔) 소득세’ 징수할라/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러다 ‘경조(慶弔) 소득세’ 징수할라/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13-01-26 00:00
업데이트 2013-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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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철수 논설위원
육철수 논설위원
어딜 가나 지하경제가 화두다. 얼마 전 대기업 중역 J씨와 나눈 대화도 그랬다. 그와 나는 지하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1이나 되는데도 나라가 멀쩡하게 굴러가는 게 신통하다고 공감했다. 얘기 끝에 J씨는 “우리 집사람도 지하경제의 공범”이라고 했다. 웬 돈다발이라도 땅에 묻어뒀나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얘기인즉, 그의 아내가 백화점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는데 너무 비싸더란다. 그래서 망설였더니 현금을 주면 20% 깎아준다고 해서 덜컥 샀단다. 듣고 보니 지하경제에 일조한 ‘공범’임에 틀림없었다.

지하경제란 세금을 피해 숨어다니는 돈이다. 그렇다고 범죄 수익금처럼 검고 구린 돈만 지하경제는 아니다. 2011년 4월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서 나온 5만원권 뭉칫돈 110억원은 똑 떨어지는 지하경제다. 불법 도박 수익금으로 밝혀진 데다 땅 속에 묻혀 있었으니…. 지난해엔 서울 강남의 어느 병원장 집에서 현금 24억원이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적발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하경제 ‘활성화’엔 정치인들도 적잖이 기여한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재벌로부터 받은 ‘차떼기 현금’은 지하경제의 역사를 새로 쓴 사건이다. 1987년 대선 때 어느 재벌이 김대중 후보에게 준 돈 상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이 돈을 며칠 보관했던 K씨는 “퀴퀴한 돈 냄새에 골치가 너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지하경제를 키우는 사람들이 어디 범죄자와 정치인들뿐이랴. J씨의 부인처럼 대부분 국민은 이익에 솔깃하거나, 불가피한 사회적 관행 탓에 ‘공범’이 되는 게 현실이다. 살다 보면 ‘영수증 없는 현금’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 좀 많은가. 지하경제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경조사(慶弔事) 비용이 대표적이다. 업무상 갑을 관계는 경조금으로 수백만~수천만원을 건넨다고 한다. 힘깨나 있거나 잘나가는 사람은 부조금 수입이 수억원은 될 것이다. 일반 가정의 경조금도 국가적으로 보면 만만치 않다. 한 해에 32만쌍이 결혼하고 25만명이 사망하니까 집집마다 경조비가 수십만~수백만원은 들 테고, 이를 다 합치면 수십조원은 족히 될 게다. 투명한 거래를 한답시고 혼주(婚主)·상주(喪主)한테 부조금 영수증을 달라 했다간 ‘미친 놈’ 소리 듣기 딱 알맞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에 들어갈 재원이 임기 5년 동안 135조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장률이 2%대로 주저앉아 세수(稅收)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새 정부는 연간 6조원을 지하경제를 파헤쳐 조달할 것이며 국세청이 총대를 멜 모양이다. 조사 인력을 몇 백명 늘려 현금거래로 탈루하는 자영업자들을 족치고 유사 휘발유 판매자, 불법사채업자를 샅샅이 뒤진다지만 세수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세금 나올 구멍이 더 이상 없으면 국세청이 ‘경조(慶弔)소득세’를 신설할지도 모른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데 독한 마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지상경제’에서는 1년에 고작 수천원 예금이자에도 몇백원 소득세를 칼같이 떼가는 국세청이 아닌가. 혼주·상주에게 부조금 장부와 필요경비 공제용 영수증 등을 첨부하게 해서 세무신고 의무사항으로 정하고, 의심 나면 현장 입회조사나 세무조사를 벌이면 간단한 일이다. 더구나 경조금은 결혼식장·장례식장 같은 길목만 잘 지켜도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세원(稅源)일 테니까.

하지만 이는 헌법보다 무서운 ‘국민정서법’을 거스르는 일이다. 국민적 공감대가 없으면 정권이 위태로울 수 있다. 성직자의 소득에 과세를 추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하경제에는 세금을 매길 수 있는 돈과 없는 돈이 섞여 있다. 그걸 엄정하게 가려내는 게 국세청의 능력이다. ‘조자룡의 헌 칼’ 쓰듯 징세권을 휘두를 생각 말고, 지하경제 양성화에 큰 공을 세운 ‘카드·현금 사용액 소득공제’라도 현실에 맞게 잘 다듬는 게 아무래도 최선일 듯하다.

ycs@seoul.co.kr

2013-01-2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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