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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주택시장에 봄날은 없다/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주택시장에 봄날은 없다/우득정 논설위원

입력 2012-09-05 00:00
업데이트 201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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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는 집값 폭락으로 인한 ‘하우스 푸어’ 급증과 지난 6월 말 현재 922조원에 달한 가계부채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쪽을 늦추면 다른 쪽이 무너진다. 양쪽 다 시한폭탄이다. 정부는 지난달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대책을 내놓았으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하지만 유로존 재정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 국면을 헤쳐 나가자면 획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훈풍을 불어넣지 않는 한 내수진작은 공염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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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득정 논설위원
우득정 논설위원
가장 먼저 정치권에서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가 임대 카드를 들고 나왔다. “금융기관과 정부가 공동출자해 국민주택 규모의 하우스 푸어 중 희망자의 주택을 매입한 뒤 임대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집값 하락세가 장기화하면 무엇보다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줄여 경기 위축이 가속화된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등 한국경제에 대재앙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채권자와 정부가 선제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세일 앤드 리스백’으로 모양새를 조금 바꿨다. 하우스 푸어의 집을 정부가 사들인 뒤 이를 원주인에게 임대하되 집주인이 여력이 생기면 우선적으로 되살 수 있게 환매(還買) 권리를 부여하자는 내용이다. 우리금융이 이달부터 하우스 푸어 구제책으로 도입을 추진하려는 대책과 매입 주체만 다를 뿐 방식은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 버블 붕괴로 하우스 푸어가 양산되고 있는 미국에서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올해부터 시작한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세일 앤드 리스백 방식은 주택시장 침체로 매매가 끊긴 상황에서 하우스 푸어는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회사로서는 추가 부실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찬성론자들은 몇 조원 정도의 주택안정기금만 선제 투입하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예견되는 수십조원의 사후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소 108만 가구(현대경제연구원 추계)로 추정되는 하우스 푸어가 극빈층으로 전락하면 결국 재정에서 떠맡게 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증요법으로 지금의 집값 폭락세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반대론자들은 도덕적 해이 논란과는 별도로 우리나라 인구 구조상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집값 상승이 불가능하다며, 재정 투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예단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이 감소하던 시기에 부동산 버블이 터졌다. 일본은 1990년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최고치인 69.7%였을 때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잃어버린 10년’에 진입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경제가 활력을 잃고 소비가 감소하는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든 것이다. 미국도 2005년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정점인 67.2%를 기록한 뒤 3년 후 금융위기와 집값 대폭락사태를 맞았다. 지금 스페인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핵심생산가능인구(25~49세)가 감소세로 돌아선 뒤 앞으로 4년 후에는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생산력 저하와 함께 구매력도 떨어진다는 얘기다. 더구나 감소 속도는 일본과 독일에 이어 세계 세번째다.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던 1972년에는 평균 가구원 수가 5.37명이었으나 2010년에는 절반 수준인 2.69명으로 떨어졌다. 자녀를 출가시킨 뒤 부모가 사망할 때쯤이면 집 한 채가 남아돈다는 뜻이다.

최근 주택가격전망지수 조사에서 계속 100을 밑도는 것은 이러한 인구 추이와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주택보급률은 2008년 100%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에는 102.3%에 이른다. 따라서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 팽창에 맞춰진 주택정책과 주거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해답은 없다. 집은 더 이상 재테크 수단도, 노후를 보장하는 곳간도 아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이것이 현실이다.

djwootk@seoul.co.kr

2012-09-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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