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기자의 컬처K] 열정이 빛나던 최진실처럼 품격있는 여배우가 그립다

입력 : ㅣ 수정 : 2012-07-3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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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도둑들’에서 여도둑 예니콜 역으로 등장하는 전지현은 금고털이 팹시(김혜수)를 두고 “어마어마한 X년”이라는 대사를 뱉는다.

목표물을 발견한 기쁨에 홀로 개다리춤을 추고 욕설을 자연스럽게 툭툭 던지는 껄렁껄렁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에서 청순가련의 대명사 전지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녀는 배우로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슷한 상황은 역대 한국 멜로 영화 1위에 올라선 ‘건축학개론’에도 나온다. 한가인이 극 중에서 술에 취해 울면서 엄태웅에게 “내가 그 X년이냐.”면서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꼭 욕설을 한다고 해서 연기 변신을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의외의 모습에 놀란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과거 같으면 CF상의 이미지 때문에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법한 일들이다.

이처럼 요즘 젊은 여배우들은 자신에게 씌워진 이미지의 굴레를 벗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과감한 도전을 하고 성숙하곤 한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외모나 도덕성을 기대하는 대중들 탓에 힘겨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드라마 ‘패션왕’ 등으로 요즘 각광받고 있는 신세대 스타 신세경은 “연기에만 전념하고 싶어도 여배우들의 외모에 대한 기준이 높아 부담스럽고 행동에 대해서도 제약받는 면이 적지 않다.”면서 “드라마 촬영 현장이 아닌 CF 촬영장에서도 여배우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영화 ‘알투비: 리턴투베이스’로 컴백을 앞둔 여배우 이하나 역시 “각종 드라마와 MC를 맡으면서 인기는 올라갔지만, 대중이 원하는 배우상과 실제 내 모습이 달라 우울증에 빠진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미모에 대한 강박 관념은 많은 여배우들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다. 그 때문에 긴박한 추격 장면의 사극에서 머리 한 올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풀 메이크업으로 나와 질타를 받거나, 의학 드라마에서 생사를 다투는 위급한 환자인데도 무결점 물광 피부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여배우의 품격은 완벽한 외모가 아니라 배우로서의 도전과 인간적인 성숙함이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보이곤 한다. 지난 2008년 3월 인터뷰한 고(故) 최진실은 세간의 선입견과 달리 상당히 소탈하고 겸손했다. 당시 드라마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뽀글 파마머리에 뿔테 안경을 끼고 외모의 망가짐을 불사하는 연기로 인기를 끈 그녀는 촬영장에서 한순간도 손에서 대본을 놓지 않았다. 촬영을 마친 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인터뷰에 응한 그녀는 톱스타임에도 상대 배우에게 공을 돌리고 “무조건 대본 많이 보고 달달 외우고 노력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것 같다.”면서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여배우는 바로 윤정희다. 지난 2010년 영화 ‘시’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당시 만난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 여배우의 기품을 보여 줬다. 질문마다 각종 비유를 섞은 시적인 표현력으로 소녀 같은 감수성을 보인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는 프랑스 파리에 오면 연락하라면서 명함을 건네는 푸근함까지 잊지 않았다.

완벽한 얼굴과 몸매로 판타지의 대상이기도 한 여배우들. 하지만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외모보다 연기 열정이 빛나는 품격 있는 여배우가 아닐까.

erin@seoul.co.kr

2012-07-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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