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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착한 심마니, 나쁜 심마니/주병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착한 심마니, 나쁜 심마니/주병철 논설위원

입력 2012-07-25 00:00
업데이트 2012-07-2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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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쯤의 일이다. 지인이 산삼을 캐 왔다며 단골 음식점으로 불렀다.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갔다. 프로급 심마니 한 사람과 지인을 포함한 아마추어급 심마니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프로가 캔 15년산 산삼을 통째로 갈아서 먹자고 채근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서자 프로는 마음을 바꾼 듯했다. 믹서기로 산삼을 갈면서 소주를 넉넉하게 부었다. 네 명이서 마셨는데 다음 날 아침 숙취가 전혀 없었다. 산삼의 효능을 제대로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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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철 논설위원
주병철 논설위원
일주일쯤 지난 뒤 아마추어 두 사람과 다시 만났다. 화두는 산삼소주였다. 그런데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프로급 심마니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같이 가서 산삼을 캤으면 같이 먹으면 될 텐데, 좋은 산삼을 캐기만 하면 가져다 팔 궁리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또 다른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심마니들의 세상 얘기였다. 그에 따르면 심마니들은 ‘독식’과 ‘나누기’가 확실하다고 한다. 당일치기로 산삼을 캐러 갔을 때는 각자가 캔 걸 그대로 가져가지만, 하룻밤을 묵을 경우에는 누가 캤느냐와 상관없이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다. 숙박을 하면 산삼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천년 내려오는 심마니들의 철칙이라고 한다. 돈의 속성과 시장의 생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다음 얘기가 더 재미있다. 이른바 심마니의 부류다. 착한 심마니, 나쁜 심마니, 고약한 심마니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착한 심마니는 동료를 절대 속이지 않고 심마니들의 철칙을 잘 지킨다. 고약한 심마니는 상대방이 산삼을 발견한 곳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장소만 표기해뒀다가 나중에 혼자 가서 산삼을 캔다. 산삼이 발견된 곳의 주변에는 또 다른 산삼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쁜 심마니는 산삼이 발견된 곳에 장삼 등을 가져다 심어놓은 뒤 손님을 데려가 산삼이라고 캐서 판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다 보니 심마니 세상이나 정치 세계나 비슷하다. 속고 속이는 게 그렇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함도 닮았다. 그래서 몇 개월 뒤 치러지는 대선 후보들의 부류가 새삼 눈길을 끈다. 곧고 바른 자세로 지킬 약속만 하는 ‘착한 후보’, 상대방의 좋은 공약이면 실천 여부에 상관없이 베끼는 ‘고약한 후보’, 실천하지 못할 공약을 내걸고 상대방을 흠집내는 데만 급급한 ‘나쁜 후보’ 등이 있을 게다. 이들은 속내를 감추고 수십년 묵은 산삼을 찾듯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

근데 국민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고달픔 그 자체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이르는 가운데 다양한 계층의 푸어(Poor·신빈곤층)족이 내뱉는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비정규직법 시행 등의 영향으로 임금 생활자는 1000만명을 돌파했지만 집 살때 빌린 대출 이자를 갚느라 어렵게 사는 ‘하우스 푸어’ 가구만 해도 지난해 기준으로 180만명을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하는 빈곤층이라고 불리는 ‘워킹 푸어’도 전체 근로자의 12~15%를 차지한다. 여기에다 지난 5월 현재 자영업자가 720만명에 이른다. 중소기업청의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수익이 200만원도 안 되는 소상공업체가 81%에 이르고, 나머지는 이보다 훨씬 열악하다고 한다. 이뿐이랴. 713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들의 본격적인 은퇴도 곧 시작된다. 은퇴 준비가 안 된 100만 가구가량의 은퇴빈곤층(Retire Poor)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대선 후보들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해진다. 착한 심마니의 길을 걸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정직해야 하고,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희망을 말해도 늦지 않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안 되고, 자신의 소신과 철학이 아닌데도 남의 것이 좋다니까 내 것으로 위장해도 안 된다. 고약하고 나쁜 심마니의 길을 좇아선 안 된다. 이런 게 제대로 지켜진다면 12월 대선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멋지고 착한’ 정치 지도자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bcjoo@seoul.co.kr

2012-07-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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