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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정치 선진국 대한민국/이도운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치 선진국 대한민국/이도운 논설위원

입력 2012-04-28 00:00
업데이트 2012-04-2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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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정치 선진국이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우물 안 개구리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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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이도운 논설위원
워싱턴 특파원 시절, 처음으로 한국 정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미 국무부에서는 매일 낮 12시에 현안 브리핑이 열린다. 세계 각국의 주요 이슈와 관련한 질문, 답변이 오간다. 2005년 1월과 2월 국무부 브리핑에 올라온 모든 나라의 빈도 수와 현안을 통계로 만들어 기사를 써봤다. 브리핑에 가장 많이 등장한 나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라크, 중국, 이란, 북한, 수단, 시리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의 순서였다. 국무부의 한 관계자가 “왜 그런 기사를 썼느냐.”고 물었다. 나는 “국무부 브리핑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가 미국이 관심을 가진 나라라는 가설을 세우고 썼다.”고 설명하고 “한국은 미국의 주요 관심국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관계자는 “미스터 리의 가설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브리핑에 자주 올라오는 나라는 정치적 이슈가 많은 나라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브리핑의 대부분이 내전, 대량학살, 철군, 암살, 위협, 분쟁 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 관계자는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는 국무부 브리핑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고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그의 말은 한국도 영·프·독과 같이 정치의 수준이 높아 국제적인 이슈가 될 이유가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정치는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손색이 없었다. 보수에서 진보까지 다른 이념과 가치를 대표하는 정당들,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 뚜렷하게 작동하는 3권분립,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 인터넷을 통한 시민들의 활발한 정치적 의견 표출까지. 세계 200여개국 가운데 한국 정도의 안정된 정치 체제를 구축하고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나라는 북미와 유럽 등지의 20~30개국에 불과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한국의 정치가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고, 극빈자도 너무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가?”, “수십년 동안 한 정당이 집권해온 나라가 진짜 민주주의 국가인가?”라고 다른 아시아국의 정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누구도 한국의 민주 정치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시대에 맞는 국가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의 역량을 모으는 데 성공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건국에서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까지 세계의 조류에 맞춰 발전해 오면서 세계 10위권의 국가 경쟁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정권 말과 대통령 선거가 결합된 어수선한 최근의 정국 상황에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한민국은 정치 선진국인가? 이 말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눈높이가 낮은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부터 K팝까지 글로벌 넘버 원을 지향하는 한국인에게 정치는 세계 20~30위 수준에서 만족하라는 것인가.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선진화됐지만, 한국의 정치문화는 아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측면도 많다. 국회 의사당 내의 폭력, 지역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 비대화된 중앙당, 하향식 공천, 정책에 우선하는 정쟁, 권력자 주변의 부패, 여전히 불투명한 정치자금, 언론에 대한 정권의 통제 유혹까지.

우리나라가 현재의 수준을 뛰어넘는 정치 선진국으로 가는 데는 과거와 다른 어려움이 있다. 먼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이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이제 우리 나라가 벤치마킹할 나라는 거의 없다. 북유럽식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 독일식 통일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우리 나라 스스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개척할 것인가. 둘째, 더 똑똑하고 독립적이고 주관이 강해진 한국 국민의 마음과 힘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 것인가. 정치 리더십의 위기는 현재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더욱 크게 느껴진다. 확고한 비전과 소통 능력을 가진 지도자. 그가 올 연말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dawn@seoul.co.kr

2012-04-2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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