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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레이건에게서 배워라/주병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레이건에게서 배워라/주병철 논설위원

입력 2012-04-04 00:00
업데이트 2012-04-0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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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철 논설위원
주병철 논설위원
1970년대 중반 미국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등으로 경제상황이 엉망이었다. 수년간의 경기침체 탓에 공화당 출신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후임으로 민주당 후보인 지미 카터가 당선됐다. 하지만 카터는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연방예산 적자폭을 줄여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카터는 1978년부터 내리 3년간 두 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카터 후임자는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당시 레이건의 승리는 카터의 실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의 비결이 있었다. 그의 선거전략은 국민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주는 데서 시작했다. 재선에 도전한 카터 후보와의 TV토론이 하이라이트였다. “국민 여러분, 지금 생활이 4년 전보다 나아졌습니까.” 진부하지만 낯익은 이 말 한마디에 지치고 힘든 국민들은 위로를 받았다. 국민들은 점차 레이건의 진정성을 알았고, 그와 함께 하면 뭔가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감동 리더십의 효과다.

레이건은 역대 어떤 후보보다 목표와 비전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했다. 지출 삭감, 세금 인하, 긴축 통화, 규제 완화 등의 공약을 왜 내놓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했고 당선 이후에는 이를 차질 없이 실천에 옮겼다. 덕분에 재임기간 중 3%대 후반의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13%대의 물가를 6%대로, 19%의 금리를 8.7%까지 낮추는 등 경제를 살려냈다.

무엇보다 레이건은 철학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존경하고 지지하는 민주당원이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도입하면서부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다는 걸 느꼈다. 뉴딜정책의 핵심은 정부 개입이었다. 그는 개인·자유·근면·정직 등 청교도주의에 뿌리를 둔 전통적 가치관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그는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는 국민들이 일할 수 있도록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믿었고, ‘놀고 먹는’ 사람에게 세금을 쓰지 않았다.

지금 우리 경제 여건과 정치 상황 등은 당시 미국과 비슷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겐 경제를 이끌 추동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수출 둔화와 소비 감소,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3% 초반으로 뚝 떨어질 거라고 한다. 고학력의 청년백수와 전체 인구의 11%를 넘어선 노인 인구의 일자리가 고민거리다. 지난해 연간 가계소득은 월평균 384만 2000원으로 전년 대비 5.8% 증가했지만 소득 5분위배율은 5.73배로 전년도(5.71배)보다 더 악화돼 걱정이다.

국가 지도자들은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들에게 용기를 복돋워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을 유혹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한국판 레이건’ 정신은 아무 데도 보이질 않는다. 국민이 정치 리더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일자리 고민보다는 이념 논쟁에 더 빠져 있다.

조만간 4·11 총선이 끝나면 대권 잠룡들의 행보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이번 대선에 나가려는 주자들은 무엇보다 훼손되고 헝클어진 한국적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데 고민해야 한다. 평등의 민주주의와 불평등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대충돌이 가져다 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답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총선용으로 급조한 공약들을 재점검해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시 내놔야 한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세목을 신설하거나 부자들이 돈을 더 내야 한다면 이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리더십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때 미국의 중흥을 일으킨 ‘레이건 대통령’을 한번쯤 연구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대적 상황이나 이념, 정책기조 등이 다르다고 해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지한 고민, 일관된 정책 집행, 국민 통합 능력 등은 배울 수 있으면 배워야 한다. 그런 게 국민을 위한 거다.

bcjoo@seoul.co.kr

2012-04-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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