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떠나는 여행 | 칠레 파타고니아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지구의 땅끝

파타고니아를 아는가? 파타고니아(Patagonia)는 ‘발(Pata)이 큰(Gon)’이란 뜻을 가진 남미 최남단에 위치한 지명이다. 1520년 이곳에 도착한 마젤란은 해변에서 구아나코 털 모피를 걸치고 모카신(인디오의 뒤축이 없는 신)을 신은 원주민 인디오가 껑충껑충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구릿빛 피부를 한 거인의 발이 어찌나 크던지 마젤란은 ‘오! 파타곤’하고 외쳤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이 지역은 파타고니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발이 큰 원주민의 땅

“젠장! 발이 통통 부어올랐네! 마젤란이 지금 내 발을 본다면 아마 파타고니아 원주민으로 오해했을 거야?”

“제발 수염이나 좀 깎아요.”

“수염보다는 운동화부터 먼저 갈아 신어야겠는 걸.”

남미의 마지막 여행지인 파타고니아 지방의 거점 도시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한 아내와 나는 발이 퉁퉁 부어올라 마치 원주민 인디오의 발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게다가 텁수룩한 내 모습은 아마 춤을 춘다면 영락없이 원주민의 모습과 흡사하였으리라. 이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 인디오들도 몽골에서 베링해협을 거쳐 계속 남하를 했다는 역사를 상기해 보면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들일지도 모른다.

도심의 중앙 아르마스 광장에는 대포 모형에 다리를 걸친 마젤란의 동상이 거만하게 서 있었다. 그 동상 아래는 원주민이 굴욕적인 자세로 마젤란을 떠받치고 있어 마젤란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원주민의 발가락은 부어터진 듯 보이면서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이는 원주민의 발을 만지면 무사하게 항해를 끝낼 수 있다는 전설 덕분에 행운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며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광이 나고 있는 것이다.

“자, 우리도 이 원주민의 발을 만지며 우리들의 소원을 한 번 빌어볼까?”

원주민의 발을 만지고 나서 우리는 운동화를 사러 갔다. 서울에서 신고 왔던 운동화를 북유럽에서 한 번 갈아 신었는데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다 헤져 발가락이 튀어 나올 지경이었다. 우리는 푼타아레나스의 어느 스포츠 숍에서 중국산 운동화를 사서 갈아 신었다.

칠레는 안데스 산맥을 따라 남북으로 장장 4,300km에 걸쳐 갈치처럼 길게 뻗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이다. 칠레에는 ‘수수께끼의 모아이’가 있는 ‘이스터 섬’이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다니엘 디포의 소설무대인 ‘로빈슨 크루소 섬’도 칠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파타고니아는 간이 큰 자들만 오는 곳이다. 유럽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해온 이주민들, 파타고니아 왕국 건설을 꿈꾼 사나이, 미국에서 은행을 털고 도망쳐 나온 갱단, 독일인 공상가, 스페인 무정부주의자, 천재학자 등….

또한 파타고니아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의 모델을 제공한 땅이자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의 무대가 된 땅이며, 셰익스피어가 말년의 희곡 《템페스트》의 영감을 얻은 땅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 부부도 간이 어지간히 큰 부류에 속하는 모양이다. 아내와 단 둘이서 배낭 하나 걸머지고 이곳 세상의 땅끝까지 왔으니 말이다.





파타고니아의 봄은 야생화 천국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파타고니아에 핀 야생화들이다. 파타고니아는 봄과 여름의 구분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여름에 해당하는 계절이 우리나라의 봄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여름이 시작되는 12월이 오면 꽃들은 그 짧은 순간에 꽃들은 생명의 싹을 틔우며 일제히 피어난다.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 마뉴엘의 추천에 따라 고물 렌터카를 몰고 푸에르테 블레스(Puerte Bulnes)로 향했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다운 파타고니아의 꽃들을 볼 수 있다는 것.

푸에르테 블네스는 푼타아레나스에서 60km 떨어져 있는 마젤란 해협과 접해 있는 지구의 땅끝이다. 이곳에는 지구의 땅끝임을 표시하는 <LAT. 53˚ 38、 15nS, LONG. 70˚ 54、 38nW> 푯말이 서 있다. 원래 칠레는 이곳에 요새를 건설했다가 푼타아레나스로 옮겼다고 한다. 마뉴엘의 말대로 정말 해안을 따라 가는 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땅에 바짝 엎드려 피어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사계절 바람이 강하게 부는 까닭에 너도밤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은 바람에 버틸 수 있는 자세로 누워 자라며, 식물들도 줄기가 작아지면서 땅에 납작하게 엎드리다시피 한 모습을 하면서 꽃을 피운다.

꽃들은 바람이 많은 대지에 밀착하여 바짝 엎드린 채 피어난다. 바람결에 일렁이며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꽃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게까지 보인다. “와아~ 원더풀!” 아내는 꽃을 보자 넋을 잃고 ‘원더풀’이라는 말만 연발한다.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

인생의 봄이 짧듯이 파타고니아의 봄도 순간에 스쳐 지나가고 만다. 그러나 꽃들은 그 짧은 촌음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피어난다. 그 짧은 순간에 생명을 잉태하고 사라져 간다. 사라져 간 꽃은 이듬해 다시 피어난다. 그러니 꽃들의 잉태와 시들음은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순간의 피어남과 시들음, 그리고 다시 피어남이 영원이 지속되고 있으니까….

푸레르테 블네스 요새에 도착을 하니 아름다운 무지개가 너도밤나무 위에 황홀하게 걸려 있다. 해변의 끝에는 건너편 티에라 델 푸에고 섬에서 떠밀려온 고사목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요새에는 노란 칼라파테(Calafate), 푸치시아(Fuchsia), 파이어부시(firebush), 루피너스(Lupines) 등… 이름 모를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푸치시아(Fuchsia)라는 꽃은 그 색이 너무 곱고 신비하여 눈이 부실 지경이다. 얼음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솟아나오며 피어 오르는 파이어부시는 파타고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와아, 눈 속에서 피어난 저 노란 꽃은 무슨 꽃이지요? 정말 아름답군요!”

“칼라파테란 꽃이래.”

“칼라파테? 무슨 영화 속에 나오는 이름 같아요.”

“파나고니아 전설에 의하면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다시 파타고니아에 온다는 군.”

“정말이요? 그럼 우리 저 열매를 하나씩 따먹어요.”

“아주 여러 개를 따먹지. 그러면 여러 번 올 수 있지 않은가?”

“에그, 정말 단 한번 만이라도 더 왔으면 좋겠어요.”

아내와 나는 설익은 칼라파테 열매를 따먹으며 기도를 했다. 다시 파타고니아에 오게 해달라고. 바람의 신이 정말 우리를 다시 데려다 줄까?

글·사진_ 최오균 오지여행가, 《사랑할 때 떠나라》 저자

※ 난치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세계 80개국 오지를 여행한 저자는

지금은 아내와 함께 DMZ 인근 임진강변에서 살고 있다.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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