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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떠나는 여행] 프라하

[둘만 떠나는 여행] 프라하

입력 2012-01-29 00:00
업데이트 2012-01-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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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도 좋을 만큼 매혹적인 - 황금소로에서의 행복한 겨울

베를린에서 프라하로 곧장 가려고 하다가 우리는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란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 드레스덴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라파엘로의 명작 <시스티나의 마돈나>는 독일의 고도 드레스덴에 가면 잊지 말고 꼭 보아야 할 가치가 있는 그림이다. 그 그림 한 점을 감상하고 다음날 우리는 드레스덴 역에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가 출발을 하자 창밖에는 눈발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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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내리는 기차를 타면 어쩐지 로맨틱한 기류가 흐른다. 더욱이 프라하로 가는 기차가 아닌가? 프라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프라하의 봄>.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지는 무척 오래전 일이다. 쿤데라 특유의 들쭉날쭉한 생각의 편린들이 난해하게 이어지는 소설의 줄거리가 기억에 남은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소설보다는 <프라하의 봄>에 나오는 외과의사 토마스와 사비나, 그리고 테레사로 이어지는 묘한 삼각관계의 영상들이 차창에 감돈다. 그중에서도 ‘배반의 장미’라 불리는 사비나의 매혹적인 자태가 유독 클로즈업 되어 온다.

그런데 기차가 출발하자 반은 사비나를 닮고 반은 테레사를 닮은 아가씨가 바로 내 앞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니키 니콜리나라고 했다. 풋풋한 사과처럼 싱그러운 얼굴, 이지적인 눈동자, 매끈한 콧날…. 눈발이 내리는 날,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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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다른 여자와 말을 걸 때는 아내가 옆에 있는 것이 오히려 도움을 줄 때가 많다. 홀로 여행을 다니는 낯선 남자가 불쑥 말을 걸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같은 여성이 함께 있으면 상대방은 긴장의 끈을 풀고 훨씬 부드럽게 대화의 창을 열게 된다. 내가 프라하 여행이 초행길이라고 하자, 니키는 프라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프라하 하면 프란츠 카프카이고, 카프카 하면 프라하를 떠올릴 정도로 프라하에서 카프카의 영향은 크다며, 카프카의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프라하 시내를 돌아보는 것도 프라하를 여행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니키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기차는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 이런 밤에는 기차가 더 달려가도 되는데…. 프라하에서는 바바리코트 깃을 세운 남자를 조심하고, 우수에 찬 푸른 눈의 여자를 조심하라고 그녀는 귀띔을 해주기도 했다. 그들은 십중팔구 소매치기나 사기꾼이라는 것. 특히 프라하 중앙역의 밤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하면서 친절하게도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트램 정거장까지 우리와 함께 동행을 해주었다.

“여기서 5번 트램을 타고 시티센터에서 내리면 가고자 하는 숙소와 매우 가까워요.”

니키는 우리가 탄 트램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눈이 내려 미끄러운 길을 아내의 손을 잡고 가까스로 여행자 숙소로 들어갔다. 프론트에는 머리를 박박 깎고 수염을 기른 우락부락한 남자 직원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방값이 너무 비싸군요?”

“프라하엔 언제나 빈방이 없답니다. 손님은 운이 매우 좋은 겁니다.”

밤늦게 도착하여 다른 숙소를 찾아 헤매기도 어려웠다. 방값을 지불하고 삐걱거리는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니 철창으로 둘러쳐진 5층 다락방이 나왔다. 방 안에는 야전용 침대 네 개가 놓여 있고, 침대 위에는 누에가 허물을 벗은 것 같은 침낭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여행자들은 아마 프라하의 밤을 즐기러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천년 동안 영화를 누려 왔던 프라하의 첫날밤은 이렇게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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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집

다음날 아침 우리는 바츨라프 광장에서부터 중세의 고도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중세기 박물관을 연상케 할 만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란 민주화 운동이 점화된 곳이다. 소련 점령군과 시위대의 격돌로 수많은 생명이 피를 뿌려야 했던 곳. 바츨라프 광장 기마상 앞에는 희생자 추모비가 지나가는 여행자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중세기 대포를 보관했던 요새 화약탑을 지나서 구시가지로 들어가니 모차르트가

<돈 조반니>를 초연했다는 스타보브스케 극장이 보였다. 구시가지는 중세풍의 고풍스런 골목이 고색찬연하게 들어서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재즈클럽, 록 공연장, 뮤직 홀, 기념품 가게, 음식점…. 골목에는 볼거리들이 유혹을 하며 여행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카프카가 그의 소설 <변신>에서 프라하를 ‘유혹의 발톱을 숨긴 도시’라고 말할 정도로 프라하는 분명 매혹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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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골목의 케밥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케밥집에는 뜨거운 포도주(Hot Wi

ne)를 컵으로 팔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우리는 뜨거운 포도주를 한 잔씩 하기로 했다. 길거리에 서서 케밥을 안주 삼아 와인글래스를 들고 잔을 마주치며 건배를 하자 콧수염을 기른 케밥집 종업원도 웃고, 지나가는 여행자들도 “치어스”하며 윙크를 했다.

골목을 빠져 나오니 구시청사 벽에 붙어 있는 천문시계 앞에 여행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천문시계가 들려주는 종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12시 정각이 되자 죽음의 신이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천사의 조각상 양옆에 있는 창문이 열리고,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가 회전을 하며 천천히 지나갔다. 열두 제자의 모습이 사라지자 갑자기 천사상 위에 있는 황금 닭이 “꼬끼오”하고 울었다. 엄숙한 표정으로 천문시계를 바라보던 여행자들은 갑자기 청승맞게 울어대는 닭 울음소리에 까르르 웃음보를 터트렸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우리는 눈발이 휘날리는 얀 후스 동상을 지나 카를교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마 프라하에 오는 사람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다리인 이 카를교를 걷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볼바타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를 걷다보면 누구나 로맨티스트가 되고 만다. 카를교는 <프라하의 봄>에서 주인공 테레사가 바람둥이 남편 토머스를 바라보며 오열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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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교에는 30여 개의 성인상이 예술작품처럼 도열해 있다. 그중에서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요한 네포포크 주교의 청동조각은 하도 사람들이 많이 만져 반질반질하게 빛이 난다. 카를교 위에는 여행자들을 스케치하는 화가들이 많았다. 우리네 인생도 저 스케치와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든 것을 사전 준비도 없이 최초로 체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마치 연습도 해보지 않고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와 같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다니는 아내와 나의 삶도 어쩌면 낯선 여행자들의 얼굴을 그리는 화가들의 스케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를교를 지나 프라하 성에 올라서니 눈 내리는 프라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볼바타 강이 중심을 가로지르는 프라하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강바람이 너무 차가워 성 비투스 성당으로 들어간 우리는 추위를 녹이며 휴식을 취했다. 어디선가 찬송가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따뜻한 성당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던 나는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아무데서나 앉으면 졸리는 것이 나의 버릇이다. 여행 중에 잠깐 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피로회복제가 아닌가. 그걸 알기 때문에 아내는 졸고 있는 나를 잠시 그대로 내버려 두곤 한다. 그러나 그 잠은 결코 길게 가지 못한다. 아내가 팔을 툭툭 치는 바람에 나는 단잠에서 깨어났다. 아내와 나는 성 비투스 성당을 나와서 황금소로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황금소로(Golden Lane)는 좁지만 아담하고 예뻤다.

“여긴, 꼭 우리나라 어느 달동네 같군요.”

“저 빨간 지붕들이 너무 아름답지 않소?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골목도 너무 마음에 들어요.”

프라하의 황금소로는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그림 같은 거리다. 작은 가게, 계단에 늘어선 노점상, 예쁘게 가꾼 창틀과 페인트 벽, 고풍스런 가로등…. 이곳은 원래 프라하 성에서 일을 하는 집시들이나 하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그러다가 차츰 연금술사들이 이주해 와 건물을 개축하여 사용하면서 점차 지금의 거리로 변모해 왔다.

“저기 푸른 가게 앞에는 웬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몰려 있지요?”

“글쎄, 맛 좋은 카푸치노라도 파는 찻집일까?”

목이 마르던 나는 진한 커피 향이 풍기는 따뜻한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푸른 벽에는 ‘No 22’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프란츠 카프카가 살았던 집이다. 카프카는 한때 이곳 막내 여동생의 집에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성> <변신> 등 주요작품을 썼다. 지금은 카프카 관련 책과 기념품을 팔고 있다. 카프카는 “골목길로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지 못한다”고 고백을 할 정도로 이 골목길을 사랑했다.

카프카의 집에서 나온 우리는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헤매다가 그만 출구로 빠져 나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비록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어버렸어도 우리는 행복했다. 프라하는 길을 잃어버려도 좋을 만큼 매혹적인 도시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진정한 여행은 길을 잃고 나서부터 시작된다고….

글·사진_ 최오균 오지여행가, 《사랑할 때 떠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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