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 통영] 통영 밤바다를 하얗게 수놓는 은갈치 떼의 군무

연신 갈치가 올라온다. 눈부신 은빛 자태로 통영 밤바다를 하얗게 수놓고 있다. 부나비 떼처럼 집어등으로 몰려드는 은갈치 덕분에, 밤새 낚시꾼들은 손맛을 단단히 보고 있는 것이다. 갑판에 쌓이는 갈치들로 모두들 신이 났다. 갈치로 사태가 난 것이다.



갈치. 오랫동안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했던 생선. 한때 서민 생선으로 참 착한 음식이었다가, 지금은 어족 고갈로 귀족 음식이 된 지 오래다. 갈치회, 갈치조림, 갈치구이, 갈치국, 갈치속젓, 갈치통젓… 어떻게 해 먹어도 참 맛있는 음식, 갈치. 그 갈치를 잡기 위해 통영바다에서 밤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남 통영 산양읍 중화마을. 어촌마을의 한적함이 아직까지 묻어 있는 소박한 포구. 이곳은 근처의 삼덕항과 더불어 전국의 낚시꾼들이 일 년 내내 모여드는 곳이다.

한려수도의 청정해역으로 다양한 어족자원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갈치 낚시와 열기 낚시는 전국적으로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심해 갈치 낚시가 거의 매일 이뤄지고 있단다.

갈치 낚시 체험을 위해 ‘온유피싱’ 이종남 사장의 취재 협조로 온유호에 몸을 싣는다. 2시쯤 출항하여 미끄러지듯 중화포구를 빠져나가는 10톤 크기의 온유호. 쑥섬과 곤리도를 스쳐 지나며 주변을 바라본다. 어선들 몇 척 점점이 떠 있고, 가두리 양식장 몇 군데 사료를 주는지 고기 튀는 소리가 크다.

포구에서 멀어지다 연대도쯤 왔을 때, 배는 이미 빠른 속도로 난바다를 달리고 있다. 목적지는 통영의 최남단 홍도 근처 해상. 배로 3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다. 끝도 없는 바다를 계속 달린다. 망망대해, 바다에는 수평선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친 엔진소리만 적막을 깰 뿐, 모두가 조용히 갈치와의 일전을 기다리고 있다. 지루한 항해에 그나마 갈매기 두엇 따르고 있어 적적함을 달래준다.


3시간여를 남하하던 온유호가 속도를 줄인다. 목적지 해역에 도착한 것. 이 사장은 조타실 앞의 어군탐지기를 보며 갈치 떼를 찾고 있다. 이리저리 한참을 낚싯대 내릴 곳을 찾다가 한 장소에서 육중한 닻을 내린다.

닻을 내리면서부터 갈치 낚시는 시작된다. 이미 깊은 바다에는 어둠이 찾아들고, 갑판 위에는 집어등이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대낮처럼 갑판이 환해지자 선체는 갑자기 활기를 띠며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15여 명의 강태공들이 저마다 10개의 낚시 바늘에 일일이 꽁치미끼를 달고 0.8kg의 추와 함께 심연의 바다로 낚싯줄을 내린다.

끝없이 풀려가는 낚싯줄. 이윽고 바닥에 추가 닿는다. 전동 릴에 나타난 수심은 75m. 배에서 바다 바닥까지 75m나 된다는 말이다. 수심 65m 전후로 맞추고 낚싯대 끝 초릿대에 정신을 집중한다. 한 10여 분이나 되었을까? 초릿대 끝이 약하게 떨린다. 온 신경의 세포들이 팽팽하게 깨어난다. 낚싯대를 힘껏 챔질하고 낚싯줄을 끌어올린다. 갈치다. 눈부신 은색의 몸체가 세상 밖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갈치는 등지느러미를 물결치듯 움직일 때마다 집어등 불빛에 번뜩이는 긴 칼처럼 보인다. 그래서 갈치를 일명 ‘도어(刀魚), 칼치’라고 부르는가 보다. 마치 바다의 은밀한 문을 지키는 검객이 용왕의 밀명을 받고 세상 밖으로 나온 듯하다. 그만큼 갈치의 모습은 날렵하면서도 현란하다. 주위 강태공들의 낚싯줄에도 연신 갈치가 올라온다. 갑판마다 갈치가 쌓이고, 그 갈치의 은비늘에 갑판이 환하게 밝다.




한참을 갈치와 씨름하다 잠시 소강상태. 하릴없이 갈매기 떼들만 뱃전을 맴돌고, 멀리 수평선 끝 칠흑의 바다에 집어등 불빛만 동무하고 있다. 50~70m까지 수심을 달리하며 갈치가 노는 수심 층을 찾는다. 갑자기 ‘토도독’ 입질이 왔다. 아주 경쾌한 입질이다. 올려보니 손님고기-낚시 대상어(갈치)가 아닌 고기-로 자주 올라오는 고등어다.

다시 미끼를 끼우고 낚싯줄을 내린다. 얼마나 됐을까? 미약한 입질. 갈치 입질이다. 한 번 챔질을 하고 두고 본다. 조금 뒤 전보다 더 강한 입질. 다시 챔질하여 낚싯줄을 올린다. 갈치가 수면 위를 하얗게 물들인다. 한 마리를 올리고 나니 연이어 다음 바늘에도 갈치가 올라온다. 10개 바늘 채비에 3마리가 낚시 바늘을 물고 올라온 것이다. 그중 한 마리는 5지(指)급이다. 5지란 갈치 체고가 손가락 5개 정도의 너비를 말하는 낚시용어. 크기는 130cm로 갈치 씨알로는 보기 드물게 큰 놈이다. 모두들 축하해 준다.

이러구러 오후 5시에 시작한 낚시가 자정을 맞았다. 이종남 사장이 오징어 채낚기로 잡은 한치로 회를 썰어 권한다. 출출한 태공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 한 잔에 한치회를 맛본다. 쫄깃하고 쫀득한 맛이 보통 아니다. 몸통은 단단한 육질로 살이 터져 오르고, 다리는 부드럽게 살강살강 씹히는 것이 그만이다.


벌써 쿨러를 채운 낚시꾼들은 하나둘 낚싯대를 접고 잠을 청하러 선실로 향한다. 조황이 부진한 사람들도 반 쿨러 정도는 채운 듯하다. 계속되는 갈치와의 한 판 전쟁. 잠깐 선미 쪽에서 웅성거린다. 손님고기로 까치복이 올라왔다. 족히 3kg은 됨직해 보인다. 좀 전에는 1m급의 삼치가 올라오더니만… 이렇듯 다양한 어종들을 선보이는 인심 좋은 통영바다다.

하늘에는 반달이 걸려 졸고 있는데 새벽 5시까지 갈치 낚시는 계속된다. 거의 다 잠이 들어 텅 빈 갑판에는, 아직까지 낚시를 하는 두 사람만 깊은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눈부시게 춤을 추며 올라오는 갈치의 자태가 아직도 눈에 어른거리고 있을 터이다.

새벽 5시쯤 잠시의 칼잠을 깨우는 소리. 닻을 올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곧이어 엔진 걸며 귀항을 위해 온유호가 기지개를 켠다. 선실에서 쭈그리고 자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만선으로 귀항하는 꿈들을 꾸는지 모두의 얼굴이 참 온화하다. 새해의 많은 날들이 항상 만선이기를 희망하는 얼굴들이다.

밤새워 쿨러를 가득 채우고 귀항을 한다. 이종남 사장의 말로는 “갈치어군이 당분간 형성될 것 같아 새해 초까지 갈치 낚시는 계속될 전망”이란다. 바다를 하얗게 수놓는 갈치의 눈부신 은빛 군무를 당분간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갈치 떼가 지나가면, 곧이어 불볼락(열기) 시즌이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통영 바다는 온통 붉은 꽃들로 꽃밭을 이룰 것이다. 바늘 바늘마다 물고 올라오는 불볼락들이 마치 붉은 동백꽃처럼 피어올라 낚시꾼들의 마음을 붉디 붉게 물들일 것이다.

글_ 최원준 시인·사진제공_ 온유 피싱(010-6307-8802)

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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