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떠나는 여행 | 베를린] 베를린에서는 100번 버스를 타라

-동서 냉전의 현장, 베를린 장벽을 가다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발견한 ‘베꼽(베를린을 배로 즐긴다는 내용)’이란 이름이 재미있어 베를린에서는 베꼽민박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베를린을 곱빼기로 즐겨 보자는 생각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날개가 얼어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바람에 런던 히드로우 공항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에 미처 짐을 옮겨 싣지 못해 큰 배낭 두 개가 도착하지 않았던 것.





마지막까지 짐을 기다리다가 결국 클레임을 청구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내의 인슐린과 약이 몽땅 큰 배낭에 들어 있었다. 아내가 복용하고 있는 약은 아무 데서나 살 수 없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것들이어서 만약 내일 짐이 늦게 도착하면 낭패였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일이니 뾰족한 도리가 없다.

공중전화를 찾아 민박집으로 전화를 거니 왜 그렇게 늦었냐며 찾아오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공항에서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열차를 타고 초(Zoo) 역에서 내려 지하철 우반(U-Bahn)을 타고 오스트반호프 역에서 내려 약도를 보고 찾아오세요.” 민박집 주인이 일러준 대로 오스트반호프 역까지 찾아가니 이미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늦은 밤인지라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엔 사람을 구경할 수가 없어 길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민박집 근처까지는 다 온 것 같은데… 전화를 하려고 공중전화 박스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거 이러다 거리의 천사가 되는 거 아닌가.” 골목을 헤매고 있는데, 마침 청바지 차림에 키가 큰 젊은 청년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구세주를 만난 듯 무조건 청년을 붙들고 주소와 약도를 내밀며 길을 물었다. 얼굴이 하얀 전형적인 게르만 혈통으로 보이는 청년은 내가 내민 약도와 주소를 들여다보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하, 바로 이 앞에 있는 건물입니다.”

“네? 저 집이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코앞에 두고 이 고생을 했네요.”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하도 어이가 없어 픽 웃고 말았다. 여행(travel)은 트러블(trouble)의 연속이라더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트러블이 일어날까? 어쨌든 ‘베꼽민박집’을 찾은 우리는 집 없는 천사를 면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짐은 도착하지 않았다. 인슐린을 맞지 못한 아내는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웠다. 베를린의 가을하늘은 푸르고 청명했다. 우중충하고 칙칙한 러시아에 머물다가 쾌청한 동유럽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이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짐을 기다리며 민박집에만 틀어 박혀 있을 수는 없는 일.

“베를린에서는 100번 버스를 타면 만사 오케이랍니다. 1일권 티켓을 사서 타고 내리며 자유롭게 구경을 하시면 됩니다. 짐이 오면 제가 잘 챙겨 놓을 게요.”

민박집 아주머니의 말대로 우리는 숙소를 나와 U-Bahn을 타고 초 역으로 향했다. 초 역에는 100번과 200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 두 버스는 2층 버스로 베를린 시내를 관람하기에 더 없이 좋은 대중교통이다.




“여보, 병원에 가서 인슐린 처방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설마 오늘 안으로는 오겠지요. 음식을 조금씩 먹고 견디어 볼 게요.”

늘 작은 배낭에 약을 넣어 가지고 다니던 아내가 하필 이럴 땐 큰 배낭에 약을 몽땅 넣었을까? 이런 경우엔 꼭 머피의 법칙이 적용된다니까. 그러니 여행 중에는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버스를 타기 전에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병원에 가서 인슐린 처방을 먼저 받자고 했으나 아내는 그냥 견디겠다고 했다.

초 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천천히 베를린 시내로 달려갔다. 2층 버스 맨 앞쪽에 앉아 있으니 거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기에도 아주 좋은 자리였다. 전쟁과 냉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베를린은 어쩐지 다른 도시에 비해 그 느낌이 달랐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가 폭격을 맞은 그대로 부서진 채 가을 하늘에 우뚝 서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집중 포화로 무참히 파괴된 참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전승기념탑 꼭대기에는 천사의 형상이 금빛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탑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기억케 하는 한 장면이다. 인류 역사상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지닌 의의는 크다. 한때 첨예하게 대립된 이념 속에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육지의 섬 속에 갇혀 서로 상처를 받아야 했다.




버스는 동서 베를린을 나누는 기점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운터 덴 린덴(보리수나무 아래란 뜻)을 지나갔다. 이곳은 독일 역사박물관, 국립 오페라 극장, 240만 권의 장서를 보관한 국립도서관 등이 운집해 있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다. 인근에는 헤겔, 마르크스와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훔볼트 대학이 있다. 우리는 100번 버스의 종착역인 알렉산더 플라츠에서 내렸다.

알렉산더 플라츠 역에서 베를린 돔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웅장하고 고풍스런 베를린 돔 앞 잔디밭에 앉아서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광장에는 분수가 시원스럽게 가을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TV타워는 베를린 시내 전체를 조망하기에 그지없이 좋은 장소다. TV타워에서 바라보는 동베를린 지역은 서베를린 지역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베를린 지역과 동베를린 지역이 서로 균형 발전을 이루려면 장구한 세월이 흘러야 할 것 같다.

광장에서 햄버거를 하나씩 사들고 먹고 있는데 맥주 통을 실은 자전거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비어바이크(Bier Bike)라는 움직이는 맥주자전거다. 여러 명이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페달을 밟고 있었다. 움직이는 스탠드바에는 커다란 맥주 통이 실려 있고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맥주를 마시고 있다.

베를린에 여행을 온 사람이면 꼭 체험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맥주자전거다. 16명이 탈 수 있는 맥주자전거는 나무탁자 위에 맥주가 쏟아져 나오는 꼭지가 달려 있고, 음악도 흘러나온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물과 콜라 등 음료수도 팔고 와인도 판다. 맥주를 사랑하는 독일인들다운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인슐린 때문에 음식을 조금밖에 먹지 못한 아내가 어쩐지 불안해 보였다. 우리는 200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 짐을 기다리기로 했다. 200번 버스는 알렉산더 플라츠 역에서 거꾸로 박물관의 섬-운터 덴 린덴-브란덴부르크-포츠담플라츠-초 역으로 가는 버스다. 민박집에 돌아오니 다행히 짐이 와 있었다. 아내는 마치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돌아온 배낭을 만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우리는 U-Bahn을 타고 베를린 장벽으로 갔다. 베를린 장벽은 베를린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동서를 가르는 냉전의 현장이었던 베를린 장벽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는 수많은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장벽을 넘어서’란 주제로 1990년 9월 28일, 118명의 세계 여러 나라 화가들이 부서진 장벽에 그린 벽화들이다. 장벽에는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벽을 타고 넘어가는 장면과 자유를 갈망하는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다녀간 여행자들의 빼곡한 낙서! 한국어로 된 낙서들도 보인다. ‘남과 북은 하나’ ‘지구상에서 하나뿐인 휴전선을 허물자!’ ‘통일이여, 어서 오라!’ 등등. 냉전의 현장에서 한국어로 쓰인 낙서 내용을 읽다보니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구상에서 단 하나뿐인 분단국가 대한민국! 과연 우리나라에 통일은 언제나 올 것인가?

유럽의 가을 해는 짧다. 내일은 독일의 고도 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우리는 어느 듯 정이 든 100번 버스를 타고 어두워진 베를린 밤거리를 돌아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베를린의 100번 버스는 참으로 편리한 버스다. 베를린에 가면 꼭 100번 버스를 타는 것을 잊지 말기를….

글·사진_ 최오균 오지여행가, 《사랑할 때 떠나라》 저자

20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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