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담는 사진작가들 | 두만강] 내 고향 훈춘 두만강물은 눈물보다 짜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의 착취와 압박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 조부와 부친은 정든 고향 함경도 명천을 떠나 만주국 훈춘의 두만강변에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어야 했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일천삼백 리를 돌고 돌아 동해로 흘러가는 두만강 하류에서의 유년시절 추억은,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땀으로 가꾼 푸르고 맑은 풍요로 기억되는 아름다운 고향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그 두만강변이 우리의 선조들이 살길 찾아 정착한 곳이었다니…. 겨레의 한이 눈물이 되어 그렇게 긴 강이 되었을까? 지금의 두만강은 그렇게 맑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조부와 부친이 강변에서 힘겹게 삶의 터전을 일굴 때만 해도 국민가수 김정구 선생의 <두만강> 노래처럼 맑고 푸른 물이 흘렀을 것이다.





1900년대부터, 가다가다 쉬며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굽이굽이 흐르는 두만강 유역의 밝고 그늘진 강변 촬영을 시작했다. 두만강은 오랜 세월을 쉬지 않고 흐르면서 차곡차곡 추억을 쌓으려고 얼마나 많은 애환의 고통을 견뎌야 했을까? 부질없는 작업일지도 모르는, 암울한 역사가 담긴 눈물 젖은 두만강을 아직도 촬영하고 있다. 민족의 역사를, 눈물의 두만강을 두고두고 보고 싶어서일까?

굽이굽이 흐르는 두만강 유역의 밝고 그늘진 강변을 촬영하며 오랜 세월을 쉬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는 우리 민족의 수많은 애환과 고통을 감싸안고 흘렀을 넓은 두만강 품에 감사한다.

이제 두만강의 쓰라린 과거는 마음에 묻어두고 나만의 삶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하여, 앞으로 이어질 내 후손들을 위하여… 내 고향 훈춘의 두만강변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아직은 정치적으로 암울한 내 고향 훈춘도 언젠가는 훈풍이 불어올 좋은 날을 기원하며….

암울했던 지난 민족의 역사를 담기보다는 ‘아름다운 고향’ 두만강변과 그 속에서의 삶을 촬영하며,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의 그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이철송·중국 길림성 훈춘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동포 사진작가이다. 1990년대부터 두만강 일천삼백 리를 촬영, 중국 길림성 연변사진가협회·훈춘사진가협회 회원전 등에 발표했다. 2003년 중국 길림성 조선족자치구 50주년 기념초대사진전 <아름다운 두만강>을 열기도 하였다. 현재는 중국예술사진가협회, 연변사진가협회, 훈춘사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글·사진_ 이철송 사진작가

20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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