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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지리산] 피아골 단풍은 가을의 전설이다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지리산] 피아골 단풍은 가을의 전설이다

입력 2011-11-13 00:00
업데이트 2011-11-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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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조선시대의 대학자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말이다. 그는 왜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는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을까? 그 이유를 말과 글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오직 가을의 전설이 흐르는 지리산 피아골에 가야만 남명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피아골 삼홍소에 도착하니 명경처럼 푸른 하늘에 단풍이 골골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만산홍엽은 맑은 계곡물을 붉게 물들이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붉은 색으로 물들게 하고 만다. 남명 조식이 과연 감탄을 할 만도 했겠다. 삼홍소 계곡에는 네 여인이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넋을 잃고 계곡에 펼쳐진 단풍의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있다. 여인들은 석고상처럼 움직일 줄을 모른다. 삼홍소의 풍광에 취해 마비가 되어 버렸을까? 남명은 삼홍소의 붉은 단풍을 안주 삼아 한 잔의 술을 마시며 피아골에 어린 가을의 전설을 노래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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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 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남명의 그 유명한 <삼홍소(三紅沼)>란 시다. 산이 붉게 타서 ‘산홍(山紅)’, 붉은 단풍이 물에 비쳐 ‘수홍(水紅)’, 그 풍경에 안긴 사람도 붉게 물들어서 ‘인홍(人紅)’을 이루는 곳이 피아골 삼홍소다.

남명은 지리산에 반한 사람이다.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의하면 남명은 덕산동으로 세 번, 청학동·신응동으로 세 번, 용유동으로 세 번, 백운동으로 한 번, 장항동으로 한 번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유두류록을 쓸 때까지 열한 번 지리산을 올랐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아마 눈을 뜨면 지리산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지리산 계곡을 날마다 오르고 싶었으리라. 남명 말고도 조선시대 지리산에 반한 사람들이 많다. 영남 사림학파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김종직은 지리산이 좋아 함양군수를 자청했고, 진주목사 김일손은 지리산 등반을 위해 진주목사를 자원할 정도였다고 한다.

피아골은 지리산 주능선인 삼도봉과 노고단 사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골골이 모여드는 깊고 긴 골짜기다. 동으로는 불무장능선, 서쪽으로는 왕시루봉 사이에 길고 깊게 파여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지리산을 ‘산속에 백리나 되는 긴 골짜기가 많고 바깥쪽은 좁고 안쪽은 넓어 이따금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 크고 깊은 산줄기들이 험하게 내려앉은 지리산에는 골마다 비극적인 역사의 흔적이 묻어 있다. ‘피아골’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름조차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피아골. 과연 ‘피’가 골골이 튀어 흘러서 피아골이란 이름이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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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피아골 석주관성을 지키기 위한 섬진강변 사람들의 피어린 전투는 지금까지도 구례군민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석주관은 영남에서 호남 곡창지대로 넘어오는 관문이었다. 천혜의 곡창지대인 호남을 점령하기 위해 물밀듯 쳐들어오는 일본군을 섬진강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석주관에서 막아냈다. 그 피어린 역사의 현장을 석주관 칠의사묘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피가 강물이 되어 푸른 강물이 붉게 물들었다(血流成川 爲碧爲赤)’고. 그날 석주관 전투에서 승병 153명, 의병 3,500명이 전사를 했다고 한다. 일본군에 포위된 섬진강변 사람들은 피아골로 후퇴하여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치렀다고 한다.

해방 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지리산은 빨치산과 그리고 그들을 토벌하던 군경들과의 치열한 격전지였다. 지리산의 울창한 숲과 깊은 골짜기는 더할 수 없는 은신처였기에 양쪽의 피해는 클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피아골은 동족끼리 수없이 피를 흘리며 좇고 좇기는 피의 역사가 흐르는 골짜기다. 그때 죽은 이들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기 때문에 피아골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피가 강물이 되어 죽은 이의 넋이 스며든 피아골, 그래서 이곳 단풍이 다른 곳의 단풍보다 유난히 붉게 타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피아골이란 이름은 직전(稷田)이란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직전(稷田)은 바로 오곡 중에 하나인 기장을 심는 ‘피밭’이란 뜻이다. 피아골 계곡 지리산 국립공원 안내판에는 피아골의 유래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피아골이란 지명의 유래는 연곡사에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러 수행하여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 중의 하나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는 데서 ‘피밭골’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변화되어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 마을을 기장 직(稷)을 써서 ‘직전(稷田)’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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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의 본격적인 산행은 그 직전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평일인데도 직전마을엔 주차를 하기가 어렵다. 단풍구경을 온 사람들이 인홍(人紅)의 무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처럼 기암괴석은 없지만 웅장한 지리산의 주능선을 따라 피가 뚝뚝 떨어지듯 붉게 물든 단풍은 피아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백미다.

색이 피처럼 붉은 것은 당단풍나무다. 노란색은 생강나무이고,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넓은 잎사귀는 사람주나무이다. 잎이 작고 붉은 것은 복자기나무이고, 길게 칼선을 이루고 있는 붉은 잎은 가래나무이다. 빨강, 노랑, 연분홍 등 형형색색의 단풍이 계곡을 따라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삼홍소를 지나면 피아골 단풍은 더욱 절정에 이른다. 삼홍교 다리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니 지리산 주능선이 웅장하게 눈에 들어온다. 시대의 어둠을 노래한 김지하는 <지리산>이란 시에서 저 산을 바라보기만 해도 피가 끓는다고 노래했다.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삽을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 가슴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

지리산이여

정말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바라보기만 해도 피가 끓는 것 같다. 구계포교 출렁다리를 지난다. 붉은 단풍에 취해 온몸이 출렁거린다.

이곳에서 임걸령을 거쳐 성삼재까지 넘어가자면 족히 5시간 이상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연곡사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피아골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돌탑에 기대어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하산을 서둘렀다. 그런데… 하산을 하다가 다리가 풀린 아내가 아차 하는 사이에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고 무릎 부위 피부에 벗겨지는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지만, 아내의 벗겨진 무릎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당신 기어코 피를 흘리고 마는군.”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요. 걷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이토록 전설적인 피아골 단풍을 구경했으니 그 정도는 괜찮다는 아내의 표정이다. 하지만 마음 가득 연민의 정으로 피를 흘리는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의 무릎에서 붉은 피가 단풍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다. 손수건으로 상처를 동여맸지만 피는 계속 흘러내린다. 그런데도 아내는 계곡의 단풍에 취해 있다. 몸도 마음도 모두 단풍 그 자체인 것 같다. 산도 붉고 물고 붉고 사람도 붉어지는 피아골 단풍은 피 흘리는 아픔마저 잊게 하는 모양이다.

절뚝거리는 아내를 부축하며 가까스로 연곡사 입구에 도착하니 가을의 짧은 해가 지리산 능선에 걸려 있다. 황혼 빛에 물든 단풍이 더욱 붉게 타오르고 있다.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했던가? 이원규 시인이 노래했듯 정말 타오르는 단풍에 온몸이 달아오를 지경이다.

글·사진_ 최오균 오지여행가 《둘만 떠나는 여행》저자

TIP

오시는 길 및 축제

기차 이용 시 용산역-구례구역

(새마을호 4시간 20분, 무궁화호 4시간 50분 소요),

버스는 서울남부터미널-구례공용터미널(3시간 10분 소요).

구례버스터미널에서 피아골까지 30분 거리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피아골단풍축제는 10월 말경에 열립니다.

호젓한 단풍길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주말과 축제기간을 피해서 주중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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