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좀 느리면 안 돼요? | 자유 토론] 빨리빨리 아닌 느림 속 행복찾기

[좀 느리면 안 돼요? | 자유 토론] 빨리빨리 아닌 느림 속 행복찾기

입력 2011-10-30 00:00
업데이트 2011-10-30 11:3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느림 속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찾아내고 있는 바리스타 조윤정(커피스트 대표). 아이들 스스로 자신만의 빛깔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키고 싶은 조항미(경복초등학교 선생님). 느림의 미학을 찾기 위해 잠시 게으름을 선택한 이상민(어린이책 편집자). 어릴 적부터 남다른 여유를 누릴 줄 알았던 지각소녀 김상미(시인). 누가 봐도 게으름뱅이인데 자신은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고 우기는 임종관(삶과꿈 편집자). 이들이 말하는 “좀 느리면 안 돼요?”는….

이미지 확대
김상미(시인)
김상미(시인)
상미
오늘 주제는 “좀 느리면 안 돼요?”예요. 다들 즐거운 시간을 가져 봐요.

종관 저는 왠지 느림을 생각할 때 게으름이란 단어가 함께 떠올라요. 아마도 게으른(누가 봐도 이건 게으름이야!)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이건 느림이야!”라고 말하는 버릇 때문인가 봐요. 근데 그만큼 두 단어는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의미를 가진 것 같아요. 쉽게 풀면 느림은 긍정의 이미지, 게으름은 부정의 이미지. 다른 분들은 이 두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미 저는 게으름이 모두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가끔은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좋지 않나요? 저는 그래서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는데.

종관 그럼 두 단어의 어감 차이는 지속성 때문인가? 저는 일이 많이 쌓였을 때 일부러 그 일을 미뤄두고 딴짓(?)을 할 때가 많아요. 일이 너무 많으면 더 하기 싫은 맘이 드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일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일을 하게 되면 실수를 하기도 하고. 더욱이 저는 주 업무가 글을 쓰거나 다듬는 일이어서 일의 진행 속도보다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새로운 글,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더 중요하니까. 이것도 느림이죠?

상민 저도 김상미 선생님 말씀처럼 게으름이 부정적인 이미지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처럼 빠른 것만 최고로 치는 사회 풍조에서는 더더욱. 사람은 좀 게으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좀 게을러야 느림으로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종관 너무 어렵다.(ㅜㅜ)

이미지 확대
이상민(어린이책 편집자)
이상민(어린이책 편집자)
상민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보면 게으름과 느림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항미 지금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겪고 있는 속도(빠른 것)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대비해서, 또는 그것들의 해결점으로 사람들이 느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실제로 그런 의미로 느림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대인들은 느림이란 단어에 매우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반면 게으름은 그렇지 못하고. 하지만 저는 이 두 단어를 그렇게 구분하는 건 별로인 것 같아요. 굳이 구분하자면 저는 그 행동을 하는 주체가 의지를 가지고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종관 의지가 있으면 느림, 없으면 게으름.

항미 굳이 구분이 필요하다면요. 저는 평소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 편이에요. 거기에는 사실 제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도 같고. 지금의 제 삶의 방식이 제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이 나를 바라볼 때는 “제는 왜 저러지? 왜 저렇게 답답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종관 저는 사람들이 말하는 느리다는 개념이 정말 느려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자주 해봐요. 제 아이가 말이 좀 느린 편인데요. 정작 부모인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 주위에서들 더 걱정(?)해 줘요. 그래서인지 저도 아이의 성장 속도(?)에 조금씩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제 아이가 정말 느린 건 아니거든요. 아이를 키우면서 갖는 기대치가 너무 앞서는 것은(또는 남들보다 앞서길 바라기 때문) 아닌지. 남들과 속도가 같지 않으면 느리다라고 말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항미 저는 현대 사회에서 느림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빠른 것만 추구하고 또는 그래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요즘의 삶에서는 다른 이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뒤쳐지지 않기 위해선) 많은 노력을 해야 해요. 다른 이의 속도에 맞춰 살다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잃어버리기 쉬워요.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허덕이고, 지치고… 그래서 삶이 더 힘들다고 느끼게 되요. 느림은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첫 걸음인 것 같아요. “난 좀 느리게 가겠다. 내 인생의 주체는 나다. 나는 내 삶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

종관 혹시 자신의 행동이 남들보다(상대적으로) 느려서 고민했던 분 있나요?

상미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 큰 불이 난 적이 있어요. 그때 아이들은 모두 부랴부랴 도망가기 바빴는데, 저는 그 상황에서 천천히 책가방을 쌌어요. 그러는 중 다행히 불길이 잡혔지만… 왠지 ‘우르르’에 밀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책가방도 중요했고요. 나중에 선생님이 저를 보고는 “넌 참 이상한 아이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책가방을 쌀 생각을 했니?”라고 말했어요.(^^) 또 저는 결석보다 지각이 많았는데, 비좁은 버스를 타는 게 왠지 자존심 상하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버스가 널널해지기를 기다렸어요. 지각을 해 운동장 3바퀴를 돌지라도.

종관 그건 여유로움인가? 그러고 보니 느림과 여유로움도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이구나. 저도 한 여유로움하는 사람인데…. 특히 뭔가 급한 일을 처리할 때. 급박한 상황에서 저의 그 능력(?)은 무한대로 발휘돼요. 제가 볼 때는 사람들이 급하다고 하는 일을 보면 그 정도까진 아닌데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 서두른다고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도 있잖아요. 다만 문제는 저의 이런 여유로움이 사람과의 약속에서도 발휘된다는 것.(^^)

상미 그건 여유로움이 아니고 불성실한 거야. 난 사람과의 약속은 꼭 지킨다고.(다같이: 하하하)

상민 제가 느끼기에도 요즘 사람들의 살아가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특히 회사라는 조직에서는요.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좀 더 빨리 일하고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은 것들을 팔아야 해요. 저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기 때문에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주로 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 만약 한 명의 편집자가 일 년 동안 책을 한 10권 정도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회사에서는 30권의 책을 만들기를 원했어요. 책을 기획할 때 빨리빨리 생각하고 좀 더 많은 양의 책을 찍어내기를 바라는 시스템이었죠. 그러다보니 편집자로서 자기 의지가 아닌 회사에서 원하는 속도에 맞춰서 일을 하기에 급급해 했어요. 그래도 한 5년 정도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건 아니지 싶은 거예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멈춰봤어요.

이미지 확대
임종관(삶과꿈 책임편집자)
임종관(삶과꿈 책임편집자)
종관
멈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상민 회사를 그만 두고 잠깐 쉬었어요. 한 10개월쯤. 쉬는 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섬진강 줄기를 따라 아주 천천히 걷는 도보여행이었어요. 남들은 일주일이면 다 걸을 수 있는 길을 저는 절반도 못 걸었어요. 하지만 덕분에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또 여행이 끝난 후엔 평소 배우고 싶었던 풍물도 배웠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회사를 다닐 때와는 다르게 제 자신에게 생동감도 발견하고. 전에는 일하면서 굉장히 불안했거든요.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래서 한 공간 안에서 같이 일해도 깊이 있는 대화나 소통을 나누지 못하고. 그런 시간을 보내다 다시 좋은 어린이책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가지고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이제까지 다녔던 회사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조직화된 회사에요. 지금까지 날 힘들게 했던 일들이 다시 되풀이 될 것을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그런데 이건 정말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어요. 일의 속도도 너무 빠르고 해야될 일도 더 많아지고. 그래서 요즘은 다시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평소 가장 해보고 싶었던 글을 직접 써 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종관 하나의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칙과 질서 같은 게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 규칙과 질서가 나 하나의 게으름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을 이해하지만 조직이니까, 그 조직이 무너지면 자신에게도 피해가 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게 두려워 상대방의 느림에 대해서 자꾸 관여를 하는 것 같아요.

상미 나 혼자 대가를 치룬다면 상관없지만, 조직이라면 어느 정도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주는 노력도 병행해야 해요. 그리고 또 정말 빨리빨리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상민 실제로도 회사에서 제가 느리게 일 해서 다른 사람(팀원)들이 피해를 봤어요. 지금의 회사는 하나의 팀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따라 회사에서 그 팀에게 점수를 매기는데 저 때문에 낮은 점수를 받기도 했어요.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저만 피해를 보면 그나마 나은데…. 그래서 요즘 다시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잠시 멈추고선 저를 돌아보고 있어요. 전 이 시간이 좋아요. 느림이 가진 좋은 점은 무언가를 해 나갈 때 그 일을 향해 폭 넓고 깊이 있게 밀고 나가는 힘이에요. 다만 외부적인 요건은 그게 통용되지 않는다는 게 아쉬워요.

종관 내가 느림을 즐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도 배려해야 한다. 이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노력까지 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고.

상미 저는 오늘 토론회에 참석한 조윤정 씨가 운영하는 ‘커피스트’의 커피가 다른 커피 전문점의 커피에 비해 조금 늦게 나오는 게 좋아 보였어요. 혹시 커피가 늦게 나온다는 이유로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나요?

이미지 확대
조윤정(커피스트 대표)
조윤정(커피스트 대표)
윤정
저희 가게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기 때문에 기계로 내리는 커피 전문점보다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는 시간이 느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지금의 방법을 바꿀 생각은 없어요. 저는 한 사람의 손님이라도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는 게 많은 손님을 받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커피스트’가 직장인이 많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방식으로는 장사하기가 힘들갰지만. 그래서 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일부러 지금처럼 한적한 공간에 가게를 차렸어요. 하지만 손님들에게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선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엄청 빨리빨리, 많이 움직여야 해요(^^).

상미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것 자체도 느림과 연관이 있네요.

윤정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는 커피의 볶은 정도나 상태에 따라 거기에 적당한 온도를 맞춰줘야 하고, 또 적당한 시간을 우려야 해요. 그래야만 커피가 가지고 있는 향과 맛, 색을 최대한 살릴 수 있어요. 저는 오랜 시간 지켜보고 여러 번 테스트 해 얻은 결과 중 가장 최상을 찾아 그 온도를 지키고, 그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히 저희 가게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점을 이해해 주고 기꺼이 기다려 주니 정말 고마워요. 그 점은 커피가 아닌 차를 우리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다도(茶道) 역시 그런 느림과 통하지 않나요?

종관 맞아요. 우리나라 다도(茶道)에도 ‘차 한 잔을 우리는 시간’이란 말이 있어요. 가까운 중국에도 비슷한 말이 있고. 왜 《삼국지》에 ‘뜨거운 마실 시간’이라는 말도 나오잖아요. 너무 주제에만 결부시키려 하나?(^^;)

항미 꼭 주제와 결부시키지 않아도 저는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은 제 안에 숙성시간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맛있는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그것을 우려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숙성(?)시간을 가져야 자신만의 향기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종관 먹을거리의 성장 속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다들 빨리 키워 상품을 만들어 돈을 버는 것에만 집착해서 성장촉진제나 항생제 등 몸에 해로운 것들로 키워 내니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돼지를 살찌우기 위해 누울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곳에서 키우고,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24시간 불을 켜두고, 더 많은 곡식을 얻기 위해 유전자변형 콩을 만들고, 거기에 성장촉진제까지 주고… 얼마나 끔직하던지.

상미 맞아요. 옛날에는 병아리가 큰 닭이 되는 데 3달 정도가 걸렸는데 요즘은 한 달 반 정도면 큰 닭이 된대요. 정말 끔찍한 일이예요.

종관 저는 사랑(또는 연애)도 너무들 빨리 빠지고, 빨리 헤어지는 것 같아요.

이미지 확대
조항미(경복초등학교 선생님)
조항미(경복초등학교 선생님)
항미
그런 제단 자체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랑이나 연애는 지극히 개별적인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볼 때 그 사람들의 연애 기간이 짧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지 기간에만 빗대어 이야기하기에는 참 복잡미묘한 것이라서.

종관 단지 연애의 기간만을 두고 말했던 건 아닌데…. 전 사랑을 할 때(사람을 만날 때) 느낄 수 있는 조급함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데 걸리는 시간. 내가 준 사랑만큼 빨리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데서 오는 조급함 같은 거요. 성급하게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어느 정도 숙성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항미 그 말에는 동감해요. 특히 아이들을 만나면서 되도록 그 아이를 판단하는 데 대해서는 최대한 오랫동안 지켜보려고 노력해요. 또 한 가지 저는 아이들이 질문을 했을 때 그것에 대해 일부러 대답을 해주지 않아요. 본인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저는 아이에게서 너무 빨리,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려는 시도들을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물론 제가 가르치는 아이가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은 있지만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우리 반에 아주 예쁜 아이가 하나 있는데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좀 느린 편이에요. 저는 교사로서 그 아이가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도우면서도 그 아이가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종관 예전에 임수정과 황정민이 주연한 <행복>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영화 내용은 황정민이 도시에서 병에 걸려 시골의 작은 요양원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임수정을 만나 병을 고쳐요. 그렇게 둘은 행복하게 살다가 황정민이 어느 날 잠깐 다녀온 도시생활의 쾌락에 다시 빠져 임수정의 곁을 떠나요. 예전에 맛들인 패스트푸드와 같은 도시생활을 못잊는 거죠. 전 그 황정민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아요.

상미 그래서 도시생활에서의 느림은 행동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비록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게 가지자. 임종관 씨 말처럼 사실 저도 그렇게 살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느림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종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는 느림에 대해 너무 행동적인 면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상미 조윤정 씨는 영국유학을 다녀왔다고 했는데 그곳 사람들은 어때요? 이곳(서울) 사람들과 좀 다른가요?

윤정 영국은 대부분의 회사들이 일을 일찍 마치는 편이에요. 6~7시 정도면 다들 일을 마치고 퍼브(Pub)에 들려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서로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그게 일종의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퍼브 문화를 알면 영국을 볼 수 있다는 말도 있어요. 티타임이라고 해서 점심과 저녁 사이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요. 또 휴가 때면 모두 여행을 가요. 휴가 때 여행을 가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로. 그만큼 모두 휴가를 즐길 줄 아는 것 같아요. 그런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가장 놀란 게 한국 사람들이 너무 빨리 움직인다는 거예요. 특히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너무 빨리빨리 움직여 걷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던 적이 있어요.

상미 맞아요. 저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한국 사람들이 가장 ‘빨리빨리’ 움직이는 것 같아요.

상민 스페인 같은 경우는 점심시간이 두 시간 정도여서 한 시간은 밥을 먹고 한 시간은 잠을 자는 시간(씨에스타)이 있는데 지금은 점점 그 문화가 없어지고 있다고 해요. 자본주의 사회와는 안 어울리니까.

윤정 또 하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늘 무언가를 하려고 빨리, 많이 움직였어요. 그래서 지금은 상민 씨처럼 의식적으로라도 일부러 아무것도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책을 보기 위해서는 밥도 하지 않고 청소도 하지 않고 그것에만 집중하고. 일이 바쁘면 직원을 더 뽑아요. 욕심내지 않고, 모든게 욕심이 문제인 것 같아요.

종관 저도 처음 책임편집자로 일하면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많은 일에 일일이 관여를 하려고 했던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생각보다 일이 더 안 풀리더라고요. 마음만 자꾸 조급해지고. 난 왜 이것들을 해내지 못할까 하면서. 지금은 득과 실을 따졌을 때 득이 더 많다면 어느 정도는 포기해요.

상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다른 것들은 내려놔야 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어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한다면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는 것. 한 가지를 선택했을 때 그 일이 생각처럼 잘 안 풀려도 조급함을 가지지 말고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다가가는 인내심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자신의 느린 속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노력도 같이 하면서.

항미 근데 또 한 번에 인정받고 싶기는 하잖아요.(다같이 맞아맞아. 에휴~ 어렵다.) 그런데 정말 자기도 모르는 재능이 있어서 한 번에 인정받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게 좀 위험한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나는 안 해도 잘 되는 구나’ 이러면서.

종관 저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면서 내가 너무 쉽게 이 아이에게 이런 것들을 사주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했던 적도 있어요. 왜 예전에는 대부분의 장난감을 직접 만들고 그걸 가지고 놀았잖아요. 그래서 소중하게 여겼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너무 쉽게 그것들을 얻는 것 같아요. 즐겁게 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사라진 거죠. 그래서인지 아이가 빨리 질려하고 쉽게 버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더 새로운 것만을 찾고.

상미 맞아 옛날에는 연도 만들고 팽이도 만들고. 또 아버지와 함께 만들면서 추억도 쌓고. 대신 그 과정이 즐거워야 할 것 같아. 일부러가 아닌.

상민 과정의 즐거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느린 삶을 살기 위해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불편해하지 않고 즐기는 마음가짐. 일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획만큼은 치밀하게 세울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최근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들의 삶 속에 제가 원하는 삶을 보았어요. 그 사람들은 여유로운 가운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 하면서 살았더라고요. 집도 천천히 짓고. 집 짓기 위해 거기에 올인을 하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도 집을 짓는 거에요. 계획은 치밀하게 잡는 대신 노동은 자신의 몸상태나 하루에 일하는 양을 정하고(5시간), 딱 그만큼만 하는 거예요.

상미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물론 서양의학이 많은 이점이 있지만 너무 그것에만 의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 몸도 자연처럼 병이 나면 어느 정도는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굳이 약이 필요 없다면 그런 방법을 찾아 보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종관 마지막으로 앞으로 실천해 보고 싶은 느림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윤정 저는 작업실을 낸 게 그런 의미인데요. 전에는 작업실이 없어서 가게에서 손님맞이와 커피를 가지고 하는 여러 가지 실험들을 함께 했어요. 그러다보니 손님맞이에 소홀하거나, 맘 놓고 실험을 할 수가 없었어요.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죠. 그래서 작업실을 냈어요. 지금은 그 작업실에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고 있어요. 하나하나 맛도 보면서.

상민 저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고 싶어요. 회사를 그만 두면서까지 결심한 거니까 빨리 시도해 보고 싶어요. 천천히 즐기면서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항미 저는 일회용품을 자제하고 조금 더 환경친화적인 삶을 실천해보고 싶어요. 조금씩, 하나하나.

종관 다들 오늘 토론회를 위해 시간을 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실천하고 싶은 ‘느림의 계획’들이 잘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집에 갔는데 내가 왜 이 말을 안 했지, 후회 되시는 분은 빨리 전화주세요.(^^) 전화는 빨리빨리~

글 정리_ 임종관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