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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그의 꿈①] 인생의 절정기 구가하는 엄앵란

[그의 삶 그의 꿈①] 인생의 절정기 구가하는 엄앵란

입력 2011-10-23 00:00
업데이트 2011-10-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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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감사, 감사, 보람 찬 ‘감사생활’

엄앵란 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의 절로 하루를 연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감사의 3배를 드린다. “오늘 아침 밝은 세상을 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바삐 살 수 있는 일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만나는 사람들과 행복한 인사를 나눌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꼭 어떤 감사할 대상이 있어서라기보다 오늘 하루 살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기쁨을 전하는 일이 즐겁다. 일흔을 넘긴 지 오래지만 엄앵란 씨는 과거 어느 때보다 바쁘다. 막내딸(강수화)이 CEO로 있는 엄앵란 싱싱김치 사업과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의 대표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한편, 방송과 강연을 통해 엄앵란표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 늘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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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근처에 있는 엄앵란 씨의 사무실(닥스클럽)로 찾아갔다. 상담 때문에 바쁜지 조금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나타난 엄앵란 씨는 생각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나이를 알고 나니까 더 젊어보인다. 필자의 어머니랑 동갑이란다. 순간적으로 어머니랑 비교해 봤는데 어머니에 비하면 정말 하나도 안 늙었다. 염색도 안 하고 보약도 안 먹는다는데 온몸에 활기가 넘친다. 말투도 할머니 말투가 아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말했다. 비슷한 또래의 아줌마랑 얘기하는 기분이라고.

“이 나이에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나이 들었다는 생각보다 지금이 인생의 절정기라고 느껴요. 과거에 비해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없으니까 누가 뭐래도 지금이 좋아요.”

정말 그래 보였다. 19살 때 은막에 데뷔한 이래 20대는 영화촬영하느라 정신없이 바삐 지냈고 30대에는 아이들 키우고, 부군인 강신성일 씨랑 살면서 마음고생이 심했고 40~50대는 남편의 정치인생 뒷바라지 하느라,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70대가 된 지금 엄앵란 씨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지만, 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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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김치 장사는 늙어서 용돈 쓸려고, 나중에 얻어먹지 않으려고, 내가 만든 김치를 다들 맛있다고 하니까 시작한 거예요. 더 이상 얘기하면 선전이야. 결혼정보회사는 내 회사는 아니지만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거니까 열심히 하고 있고, 하다 보니까 재미도 있어요. 강연도 즐거워요. 돈 받아가면서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구경하고, 맛있는 것 먹고, 사람들 만나고 하는 게 좋아요.”

어느 방송에선가 부군인 강신성일 씨가 나와서 “우리 부인은 아침에 눈만 뜨면 그때부터 돈이 들어온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거저 된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 식당을 하다가 제2의 인생을 살아보자 결심하고 서울로 올라와 방송 리포터를 시작한 것이 쉰여덟 살 때 일이다. 왕년의 대스타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녀는 방송 일에 매달렸다. 리포터 생활 1년 만에 KBS의 ‘아침마당’에 출연하면서 과거의 명성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엄앵란 씨의 매력은 솔직함에 있다. 부부 사이의 껄끄러운 얘기도, 눈물나게 고생한 얘기도 그녀의 입에서 나오면 속이 후련해진다. 가식 없이 자기를 드러내는 말에서 사람들은 많은 위안을 받았으리라.

“나는 강연을 하면 옛친구들 만나서 노는 것같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원고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는데 다들 공감해 주고 같이 박수 치고 깔깔거리다 보면 어느 샌가 강연시간이 다 끝나요. 옛날 동네친구처럼 맞아주시니까 고맙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경치 구경해서 고맙고, 배우고 강의하고 돈 받아서 고맙고, 또 끝나면 식사대접 푸짐하게 해줘서 고맙고, 모두가 고마운 일이지요.”

강연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주부들이 ‘왜 나만 당하는가, 나만 인정 못 받는가’ 하는 생각에 한이 맺혀 있다고 한다. 엄앵란 씨가 하는 일은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마음에 맺힌 물꼬를 터주는 것이라고 한다. 너만 그러는 게 아니고 나도 그렇고, 이웃집 모두 다 그렇다고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그런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아무리 잘못한 사람도 용서가 되고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진다고 한다.

“집집마다 걱정 없는 집이 어딨어요? 하다 못해 강아지 고뿔이라도 걸리잖아요. 난 아침에 일어나면 천장 보고 감탄해요. 하늘도 보이고 강물도 보이고 보이는 것에 대한 감사,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감사할 일이 많아요. 살다 보면 기막힌 일도 많은데 그게 다 살아 있으니까 그런 일도 생기는 거지. 괘씸한 일이 있으면 ‘그래, 먹고 떨어져라’ 하고 난 잊어버려요. 밤잠 안 자고 고민해 봐야 소용없어요. 그래 봤자 달라질 건 하나도 없는 걸 뭐, 모두 다 용서하고 감사하면 또 새로운 힘이 생겨요.”

엄앵란 씨는 중년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무조건 여자 편만 드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고충도 이해하면서 여자들에게 남자를 품으라고 하기 때문이다.

“나도 신성일 씨랑 살면서 별일 다 겪어봤잖아요. 그걸 이해하고 같이 살았으니까 남자들이 나 보고 ‘마음이 넓다, 한량이다, 여자도 아니다, 나도 저런 여편네랑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내 팬이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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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00점 없어요, 70점만 되면 만점

이쯤해서 슬그머니, 다시 태어나도 신성일 씨랑 살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평생 외롭게 과부처럼 살았는데 미쳤어요?(웃음) 월급쟁이랑 살고 싶어요. 오순도순 주말에 김밥 싸가지고 교외에 놀러 다니고, 쉬는 날엔 아이들 데리고 목욕탕 같이 가고, 오다가 자장면 사먹고. 그런 게 인생의 성공이에요. 벤츠 속에는 고민이 더 많아요. 이 세상 고민 중에서 돈 없는 게 제일 간단해요. 돈만 한 보따리 주면 금세 해결되잖아요.”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요즘의 결혼 풍속도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을 것 같았다. 매스컴에서 보면 진실한 만남보다 여러 가지 조건만을 따지는 세태를 꼬집는 기사가 많다. 어떻게 해야 좋은 배우자감을 만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인생 100점 없어요. 70점만 되면 만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아요. 70점짜리끼리 만나서 140점 만들어서 행복하게 살면 되지요. 인생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지만 공식이 없잖아요?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그걸 이겨낼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모나 조부모를 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돈이나 학벌을 보지 말고 전반적인 가정환경을 보라고 해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밖에서 연락이 왔다. 상담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단다. 약속시간도 거의 다 돼서 마무리 질문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가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란다. 복숭아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탐스런 복숭아를 내놓았다. 단물이 흠뻑 밴 맛있는 복숭아를 먹으면서 기다렸다.

마지막 질문은 여가는 어떻게 보내는가였다.

“모여라, 하면 모이는 식구들이 있어요. 동생네 식구들, 딸네 식구들 모두 모이면 열댓 명 되는데 같이 여행을 다녀요.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을 네발자전거로 달리기도 하고 주문진 바닷가에 가서 회도 먹고 온천 수영장에서 아이들 노는 것도 보고, 천리포수목원에서 저녁놀도 보면서 식구들끼리 놀아요.”

엄앵란 씨는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환영해 줘서 그것이 무엇보다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앞으로 소망을 묻는 기자에게 텃밭에 꽃 가꾸고 베란다에서 상추 키우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일어서는 기자에게 신성일 씨가 광고에 출연한 피자쿠폰 한 장을 주면서 말했다.

“비오는 날 집에서 피자 한 판 시켜 먹어요. 나하고 노니까 재밌지?”

글_ 김창일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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