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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그의 꿈②] 부산 박 불케리아 수녀

[그의 삶 그의 꿈②] 부산 박 불케리아 수녀

입력 2011-10-23 00:00
업데이트 2011-10-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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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따뜻해지는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마리아 수녀회’를 아십니까? 부산시 서구 감천동. 멀리 감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천마산 중턱에서, 결손가정의 아이들과 옹기종기 생활하고 있는 가톨릭 수녀 봉사단체입니다. 가정과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1964년 미국 출신 ‘소 알로시오 신부’가 설립한 수녀회입니다. 50여 년 동안 충만한 사랑으로 아동육영사업과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힘들게 설립한 알로시오 중·고등학교와 알로시오 병원은 오로지 아이들의 교육걱정, 건강걱정 때문에 어렵사리 꾸려오고 있다는, 참 마음 예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음률과 고운 화음으로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가정이 결손되고 부모의 정이 늘 그리운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악기 하나하나에 사랑을 불어넣고 희망을 켜고, 열정을 두드리며, 하나의 웅장한 음악을 차곡차곡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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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기에 그들의 음악에는 기성 관현악단이 보여줄 수 없는 가슴 벅찬 사랑의 메시지가 가득하고, 사람을 그리는 그윽한 그리움이 절절합니다. 그들에게서, 음악에의 열정과 세상으로 향한 희망을 본 사람들이, 그들의 연주를 보기 위해 모여듭니다. 꿈의 무대 ‘카네기홀’ 연주나 멕시코 정부의 초청연주도 그렇게 이뤄졌고, 그렇게 성황리에 펼쳐졌습니다.

그 감동의 연주 뒤편에는 늘 자그마한 키에 미소를 잃지 않는 ‘그들의 어머니’, 박 불케리아 수녀가 있습니다. ‘마리아 수녀회’에서 1972년부터 40여 년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입니다. 주로 각 방마다 10여 명 남짓의 아이들을 돌보며 생활하는데요, 1984년부터는 오케스트라 업무까지 겸하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30여 년, 지금의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가 있기까지 묵묵히 단원들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해온 수녀입니다.

그 아름다운 분을 만났습니다. 예의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수녀님은 참 정갈한 분 같았습니다. 수녀회에 들게 된 계기를 상투적(?)으로 물었습니다. 우문현답이 돌아왔습니다.

“1970년 전후, 그 시절에는 곳곳에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 많았습니다. 그 아동들을 보살피는 일들을 ‘마리아 수녀회’에서 하고 있었죠. 평소에도 불우한 아동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했는데, 이곳에서 그 일들을 하고 있기에 들어오게 된 거죠. 이곳에 오면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요.”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떻게 설립이 되었는지 말입니다.

“설립자 소 알로시오 신부님은 참 앞서가던 분이셨어요. 미사반주를 아이들이 직접 연주하면 어떨까 생각하셨고 그 일을 옮기게 된 게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의 시작이었죠. 처음에는 빈 교실에서 자투리 시간에 힘들게 연습을 했었죠. 그래도 아이들의 열정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지금에까지 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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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단원생활을 한 아이들만 2~3백여 명. 그중에는 지금도 계속 음악을 하고 있는 친구도 많답니다. “부산시향 2명, 울산시향 4명을 비롯해 포항, 천안시향에도 우리 아이들이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벨기에에서도 활동하는 아이들이 있고요.”

“참 자랑스럽고 대견하시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고맙죠. 제 말을 잘 따라주고, 서로 도와가며 오케스트라를 위해 헌신했으니까요. 젊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게으름도 부릴 수 있는데도 가족으로서의 의무감을 잘 알았고 공인으로서 어른스럽게 처신했어요.”

‘소년의 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과 같은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자활해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려면 고등학교 때부터는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자활의 준비시간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원들은 이러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불케리아 수녀는 이러한 단원들에게 “지금은 너희의 시간이 희생 되더라도 결국 지금 이 시간은 너희들의 큰 자산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할 줄 아는 너희들이, 결국은 인생의 성공자가 될 것이다”라고 다독거렸답니다.

1991년부터 매년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는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는 지금껏 21회째 연주를 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녀님들이 표를 팔러 다닐 정도로 홍보가 안 됐죠. 그러나 10년쯤 지나고 나니까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시고 연주회를 기다리는 분들도 생겨나기 시작하더군요.”

특히 세계적 바이올린리스트 사라장이 마리아 수녀회를 방문해 단원들과 음악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단원들의 ‘음악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음악기획사 ‘크레디아’ 대표 정재욱 사장님도 우리 오케스트라를 깊은 애정으로 도와주셨어요. 인지도 있는 유명 연주자들과 협연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습니다.”

2007년에는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 씨가 기금마련 연주회에서 직접 지휘를 맡으면서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는 또 한 번의 도약의 길을 걸었답니다. 그 이후로 정명훈 씨는 이들의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돕고 있는데, 그의 아들인 지휘자 정민 씨도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맡게 돼 2대가 이들과의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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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 불케리아 수녀는 소년의 집 졸업생들의 모임인 ‘알로시오 열매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알로시오 신부님을 거쳐 간 우리 아이들과 소통 업무를 맡고 있어요. 수녀회 건물 한 동을 이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었어요. 우리 열매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잠시 쉬고 가는 곳이지요. 이곳은 그들에게 있어 고향집이나 친정 같은 곳이죠. 요즘도 가족 단위로나 친구들과 함께 찾아옵니다.”

“게스트 룸 같은 개념이네요?” “예, 업무 중 일부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 크게 보면 그들이 기쁠 때나 힘들 때 같이 기뻐해 주고 슬퍼해 주는 친정 같은 역할, 삶에 지쳐 있을 때 마음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고향집 같은 곳을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이 일을 하면 졸업생들에게서 많은 소식을 접하시겠습니다.” “예, 특히 이 아이들은 가정이 없거나 결손된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예쁘게 키우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죠. 그래서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보내오기도 하고, 아기 돌잔치 한다고 초대도 해요. 그럴 때마다 너무나 대견하고 보람되죠.”

현재 63세의 적지 않은 나이의 불케리아 수녀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꿈이 많아요. 우선 우리 아이들을 오래도록 돌보는 것이겠지요.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들과 함께할 겁니다. 그리고 알로시오 신부님을 거쳐 간 1만여 명의 우리 아이들이 세상 어디에서 살든 행복하고 훌륭하게 살아가도록 조력자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재산, 권세, 명예를 좇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과 그들의 사회를 사랑하며 부끄럽지 않은 사람, ‘나’라는 존재가 귀하고 떳떳한 사람이 되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 저의 마지막 꿈이죠.”

“늘 많은 분들께 그들의 꿈을 여쭙는데, 그중에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꿈인 것 같습니다”는 말에 그녀는 수줍게 “저의 꿈이 또 다른 욕심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며 겸손해합니다.

명예와 재산, 권력이 성공의 척도가 되는 시대에 살면서, 박 불케리아 수녀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며 서로를 위하는 삶이 정녕 성공의 삶’이란 것을 가르쳐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고요.

그녀는 소 알로시오 신부의 말씀을 대신 전함으로써, 그녀의 삶과 꿈이 너무나 따습고 숭고한 것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가족과 부모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에,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의 것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가족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에 비해 상실감이 크기에, 그 관심을 온전히 대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취재를 마치고 수녀회를 내려오는데, 왜 이렇게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평화로워 지는 걸까요? 감천항 쪽으로 늦은 놀이 뉘엿합니다. 그들의 온화한 사랑처럼 온 하늘을 붉게,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글_ 최원준 시인·사진_《너같이 좋은 선물》(예닮)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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