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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W범죄’는 빙산일각…불공정·반칙 범람

‘ELW범죄’는 빙산일각…불공정·반칙 범람

입력 2011-06-29 00:00
업데이트 2011-06-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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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공정 사각지대서 선량한 개미들은 ‘필패’

자본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계속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이 확인됐다.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주식워런트증권(ELW) 범죄는 전체 자본시장의 음습한 거래 관행과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증권사들이 ELW 거래에서 스캘퍼(초단타 매매자)에게 전용회선을 제공한 것 외에도 개인투자자들이 투자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사례가 자본시장 곳곳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연합뉴스 취재 결과 파악됐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29일 “스캘퍼 사건은 그동안 증권사들이 자행해 온 불공정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증권사들의 영업행태에 대한 검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개인투자자 매매속도에서 절대적으로 불리

초단타 거래가 대부분인 ELW 거래에서 손익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주문이 거래소에 도달하는 속도이다. 스캘퍼는 일반 투자자보다 3~8배 빠른 속도로 주문할 수 있도록 전용회선이란 특혜를 받았다.

정부는 지난 5월 내놓은 ELW 건전화 방안에서도 전용회선을 허용했다. 다만, 개인투자자가 전용회선을 원하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개인이 전용회선을 쓰려면 증권사로부터 투자 적격성을 판정받고 개별 계약을 맺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개인이 전용선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스캘퍼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증권사들로부터 전용회선을 받는다.

ELW 외에도 모든 파생상품에서 기관은 개인보다 빠른 속도로 거래를 체결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기관이 개인보다 우수한 전산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거래 속도에서 앞선다. 그렇지만, 이를 규제할 길은 없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관은 사후위탁증거금을 적용받지만, 개인은 사전위탁증거금 대상이어서 거래체결까지 걸리는 시간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개인은 수수료에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증권사들이 기관이나 우수고객에게 ‘협의수수료’라는 명목으로 특헤를 주는 반면 개인에게는 그런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

◇ 정보에서 한발 늦어지는 개인

증시에서 정보의 취득 속도는 투자의 손익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요소다. 중요하고 정확한 정보를 빨리 입수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은 정보를 뒤늦게 입수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 시장에서 문제가 된 중국고섬이 단적인 사례다.

중국고섬은 3월22일 국내 증시에서 거래 정지됐다. 하루 전날 기관투자자들은 이상 징후를 미리 알고 보유주식을 처분했으나 정보에 뒤처진 개인투자자들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봤다.

금융당국은 기관이든, 개인이든 같은 시간에 동일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공정공시’ 제도를 오래전에 만들었지만 이를 빠져나가는 사례는 많다.

또 기관투자자는 기업설명회(IR)에 최우선 순위로 초청돼 공시 대상 정보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정보까지 포괄적으로 얻는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은 IR에서 대체로 소외된다.

소액주주운동 커뮤니티 네비스탁의 김정현 대표는 “IR가 회사의 실적과 전망을 과장하거나 왜곡할 수 있으나 이런 IR를 통해 기관이 일반투자자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와 투자자문사, 기관투자자가 서로 짜고 선행매매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펀드매지저와 애널리스트가 함께 기업탐방을 하는가 하면, 애널리스트는 기관이나 ‘큰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 등에서 자신의 보고서를 사전에 누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경순 한국외국어대 글로벌경영연구소 연구원이 지난 3월 내놓은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대한 투자자 유형별 거래형태와 정보력 결정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기관투자자의 거래량은 보고서 발표 전에 연평균 거래량보다 20% 증가했다.

개인과 외국인이 발표 전 각각 13.6%, 9.8%의 증가율을 보인 점을 고려하면 개인과 외국인보다 기관에 정보가 빨리 갔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봐야 한다.

김 연구원은 “애널리스트들이 기관들에 보고서 내용을 사전에 누설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통계분석 결과, 그런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한지방행정공제회의 주식팀 직원이 배우자의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공제회의 매수예정 종목을 미리 매수하고서 주가가 오르면 파는 선행매매를 한 비리가 들통났다. 2천87차례의 이런 수법을 통해 1억1천여만원을 챙겼다.

몇 년 새 폭발적인 인기를 끈 자문형랩에서도 잦은 반칙이 있었다. 자문사 임직원이 자문 종목을 미리 사고팔아 이익을 챙긴 것이다.

◇ 외환차액 거래에서도 개인은 “억울”

외환차액(FX마진) 거래에서도 개인은 불공정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FX마진 거래는 2개의 통화를 동시에 사고팔면서 환차익과 금리차이를 노리는 파생상품이다.

시장 참여자의 99%가 개인 투자자이지만 정작 이들이 이득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금감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장 참여 개인투자자의 90%가 원금을 까먹었다.

증권사와 선물사는 직접 외환거래를 중개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의 호가중개업체(FDM)에 투자자들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문제는 개인투자자가 적절한 이득을 낼 수 있는 호가로 주문을 내더라도 외국 호가중개업체가 자신들의 손실이 예상되면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 등 횡포를 부린다는 데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증권사와 선물사는 통제 밖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이런 횡포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와 선물사가 수수료로 배를 불리는 동안 개인투자자는 거래상대방의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으며 공정거래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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