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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두만강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두만강

입력 2011-05-29 00:00
업데이트 2011-05-2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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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정구 선생의 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은 내 기억으로는, 내가 부른 첫 번째 가요였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두마~아안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배~앳사공”을 부르던 아버지 세대들의 모습을 어린 시절 나는 무수히 많이 보았다. 두만강은 어디 있을까? 가본 적이 없는 두만강을 찾아보면 북한 땅에서도 맨 위 중국과, 그리고 소련과 맞닿은 그곳으로 국경선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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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어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 그곳 두만강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은 두만강 인근에서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목격했던 강의 이쪽과 저쪽 사이의 갈등을 여섯 번째 영화 <두만강>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화 <두만강>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은 픽션이지만 어쩌면 픽션이 아니라 우리 현실 속에 벌어졌던 혹은 벌어질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무대는 두만강 건너 중국 쪽 땅에 살고 있는 조선족 마을이다. 할아버지와 벙어리인 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열두 살 창호(최건)는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창호의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갔고 가끔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 감시병의 눈을 피해 수시로 중국 쪽으로 넘어오는 북한 쪽 마을에 살고 있는 정진(이경림)과 축구를 하면서 친구가 된다. 창호는 축구 실력이 뛰어난 정진에게 처음에는 아랫마을과의 축구시합에 참가한다는 약속으로 음식을 구해주지만 두 아이들 사이에는 점차 우정이 싹트게 된다.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강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갈등이 시작된다. 중국 쪽 조선족 마을도 풍족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같은 동포이기 때문에 북한 쪽 주민들에게 온정을 베푼다. 하지만 동태를 만들기 위해 널어둔 명태가 사라지기도 하는 등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겨난다. 조선족 마을 이장은 북한을 넘나드는 트럭 속에 탈북자를 숨겨 와서 중국 땅에서 풀어주고 대가를 받는 탈북 브로커 일을 하다가 체포되어 끌려간다. 어느 날 밤 총소리를 피해 문을 두드린 탈북자를 창호의 할아버지는 헛간에 숨겨주었지만 그 탈북자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창호의 누이 순희(윤린)를 겁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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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를 찾아온 정진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창호의 누이가 입덧을 하며 아이를 갖게 되자 정진은 창호에게 자기가 본 사실을 이야기한다. 창호는 가슴 속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강을 넘어오는 북한 마을아이들을 몽둥이로 후려친다. 중국 관청에서는 탈북자를 신고하면 포상을 한다고 하자, 같은 동포이지만 조선족 마을과 탈북자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흐르게 된다.

창호와 조선족 아이들의 린치에도 불구하고 정진은 아랫마을 사람들과의 축구시합에 참가하겠다는 창호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조선족 아이는 탈북자 아이들이 있다고 공안경찰에 신고를 하고 창호와 정진이 축구를 하고 있는 곳으로 공안이 찾아와 정진은 붙잡힌다.

영화 <두만강>에서 두만강은 흐르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은 영하의 겨울이다.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에 나오는 두만강 푸른 물, 그리고 노 젓는 뱃사공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황량함, 꽁꽁 언 두만강이 있을 뿐이다. 두만강은 하나의 경계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중국과 북한을 가르는 국경선이라는 현실적 경계뿐만 아니라 조선족 마을사람들과 탈북자들 사이를 가르는, 축구를 좋아하는 또래의 소년들이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창호와 정진을 가르는, 무서운 경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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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 아니라 배고픔과 허기,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아니라 그것은 정치적·사회적·현실적 여건들이 작용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무서운 경계이다. 장률 감독은 감정이 절제된 그래서 더욱 아프고 시린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응시하고 그것을 스크린 위에 보여준다.

소설가이며 연변대학 교수 출신인 재중동포 장률 감독은, 첫 번째 영화 <당시>를 통해 체제의 자유분방함에 비해 형식은 엄격했던 당시를 빗대어 좁은 방안에 사는 주인공의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했었다. 그의 두 번째 영화 <망종>은 어린 아들 창호와 함께 살아가는 조선족 여인의 힘겨운 삶을 그리고 있는 뛰어난 걸작이다. <망종>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과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소개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장률 감독은 이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경계>와 <이리> <중경> 등을 만들었고, 여섯 번째 <두만강>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 <두만강>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장률적이다. 감독은 극도로 영화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그 속에서 살아 숨 쉬게 하고 자신은 차갑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장률의 미니멀리즘은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고 관객들에게 현실을 제대로 보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다.

글_ 하재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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