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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시장실패 정부실패/오병남 논설실장

[서울광장] 시장실패 정부실패/오병남 논설실장

입력 2011-05-07 00:00
업데이트 2011-05-0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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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남 논설실장
오병남 논설실장
정부는 시장 실패(market failure)를 말하고, 시장은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를 우려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과 시장의 반발이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내세우며 고환율 정책 등으로 기업, 특히 대기업을 지원했는데 정작 대기업은 돈을 쌓아놓고 오히려 빚까지 얻어 몸집만 불렸다고 불만이다. 물가 불안을 감수하면서 수출을 지원하고, 출자총액 제한을 풀고, 법인세도 내렸지만 기대했던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소극적이어서 부의 불균형(양극화)만 심화됐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시장 실패를 근거로 한 정부의 시장 개입은 본격화됐다. 친서민-공정사회-동반성장에 이은 이익공유제, 공적 연기금 주주권 적극 행사 등 일련의 움직임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듯한 신호를 주기에 충분했다. 기름값과 통신비 인하를 겨냥한 기업 옥죄기도 같은 흐름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인식이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은 과연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일까. 정부의 집요한 압박으로 내려간 기름값이 이내 되돌아 가고,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이 부실 건설업체의 퇴출만 더디게 한 데서 보듯 우리 경제의 여건이나 규모를 감안할 때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역사적으로도 시장 실패를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개입은 정부 실패를 낳은 경우가 적지 않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다. 시장은 이기적이다. 도덕과 규범이 아니라 이윤을 좇는다. 그래서 늘 옳은 것만은 아니다. 자원과 소득 분배의 왜곡 등 이른바 시장 실패가 나타나기도 한다. 때문에 정부가 시장이 착한 기능을 하도록 개입하는 것이 정당성을 갖는다. 1930년대 대공황과 독·과점 강화, 1973·78년 1·2차 오일쇼크 등은 시장 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재정 확대를 통한 대공황 탈출(뉴딜정책)에 성공한 이후 정부의 시장 개입은 확대된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정부의 몸집을 불리고 규제만 양산한 채 효율성의 하락을 부르기 일쑤였다. 이른바 정부 실패인 셈이다. 우리나라처럼 정부의 입김이 센 나라에서는 정부 실패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시장 실패를 바로잡겠다며 시장을 계획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비효율의 덫에 걸려 몰락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정부 실패인 셈이다.

4·27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함으로써 여권의 위기감은 더 커졌다. 내년 총선과 대선 등을 염두에 둔 정치논리가 시장에 끼어들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정부든 기업이든 월경(越境)의 유혹을 떨쳐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부는 법과 제도에 따라 경제주체들의 자율을 보장하되 공동선을 위협하는 이기적 선택을 ‘심판’하는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시장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게임의 룰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과감히 풀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게 옳은 길이다.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은 2010년 183개국 중 16위를 차지했지만, 창업·재산권 등록 등에서는 여전히 국제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의 투자는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기업, 특히 대기업은 지난 50여년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린 온갖 혜택을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마치 모든 것을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이룬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감당하기 어려운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양극화로 사회가 위험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서민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쓴소리와 호소는 그래서 매우 유효하다. 사회적 책임과 기업가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시장 실패도 정부 실패도 선진국 문턱에 선 대한민국이 비켜가야 할 일들이다.

obnbkt@seoul.co.kr
2011-05-0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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