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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이야기] 지리산학교 이야기

[촌스러운 이야기] 지리산학교 이야기

입력 2011-02-27 00:00
업데이트 2011-02-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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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를 이웃에게 가르치고 나누는 ‘별난 학교’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다양하게 살아가듯, 지리산 둘레에서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도 품이 넓은 지리산의 골골샅샅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중에는 태어날 적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들이 많지만, 요즘에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각자가 그리는 세상만큼이나 사는 모습도 개성이 넘칩니다. 스님,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 도사님을 비롯해서 기공하는 분, 약초 연구하는 분, 생식하는 분, 요가하시는 분, 오로지 걸어 다니기만 하는 분, 차를 만들고 차를 마시는 분 등등. 눈에 띄게 혹은 눈에 띄지 않게…. 최근에는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 더 몰입하기 위해 복잡한 도시를 떠나 지리산 둘레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타지인인 그들은 일을 하는 와중에도 가끔씩 만나 때론 실없는 수다를 떨기도 하고, 밥을 먹거나 술 한 잔을 나누기도 하고, 자신의 고민의 무게를 나누기도 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다독이다 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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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평소 모임을 갖던 몇 명이서 ‘우리 이제는 자신의 작업세계에만 갇혀 있지 말고, 서로 나눠가지자’는 말이 오갔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세계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으니 이제 자신의 재주를 이웃에게 또는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바람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지리산학교’입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재주도 있으니 따로 선생님을 구할 필요도 없고, 각자의 작업실이 있으니 따로 공간(학교)을 만들 필요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학생들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우리 둘레에 많으니 이 또한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림반, 기타반, 도자기반, 목공예반, 사진반, 숲길걷기 반, 시문학반, 옻칠공예반, 천연염색반, 퀼트반 등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동안 각자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했던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는 서툴렀지만 그래도 열정만은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공통된 화두나 거리를 찾지 못해 각자 바다 위의 ‘섬’처럼 지내야 했던 지리산 둘레 마을사람들이 비슷한 취미와 생각으로 한데 뭉칠 수 있는 거리를 찾음으로써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모두들 즐거워하고 행복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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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학교의 한 학기는 3개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이 시간 동안 모양새는 비록 명품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래서 가치만은 더 명품인 나만의 그릇과 다탁(茶卓), 가방 등이 만들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단지 인터넷 댓글을 잘 쓰고 싶어서 시문학반에 등록했다는 아줌마는 한 학기를 갈무리 할 즈음에는 자신이 지은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기타를 잡을 줄도 몰랐던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멋지게 기타를 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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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맡고 있는 반은 숲길걷기 반으로 굳이 따지면 예술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저는 걷기만한 예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도 재미있어 하며 잘 따라옵니다. 우리 반의 수업은 다른 반에 비해 시간이 많이 들어 주로 2주에 한 번씩 토요일을 이용해 수업을 합니다(다른 반의 경우 주로 주중에 수업을 합니다). 그 덕분에 지리산 둘레뿐 아니라 전국에서 수강생들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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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은 주로 낮은 능선을 따라 걷는데 길이 험하지 않아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숲길은 항상 싱그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깁니다. 특히 계절이 변하며 함께 변하는 풍경을 마주할 때면 정말이지 다들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잘 몰랐던 나무나 풀, 들꽃의 이름을 알아가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솔잎이 융단처럼 쌓인 오솔길을 만나면 맨발로 그 위를 걷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살갗에 닿는 땅, 산, 우주가 내 안으로 빨려들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론 나 자신보다 한참 오래 살아온 나무둥치를 안고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나무둥치에 귀를 대고 나무의 숨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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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실은 지리산 전체이지만 주로 지리산학교에서 가까운 악양과 화개 둘레의 산을 선택합니다. 지리산은 워낙 넓어서 같은 산이라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시간도 꽤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악양과 화개 둘레의 산만도 정말 걷기 좋고 명상하기 좋은 등산로가 충분해 나는 그때그때 계절이나 상황에 맞게 코스를 정하는데도 나름 고심을 해야 합니다.

저는 길을 선택할 때 사람들이 많이 지나지 않아 조용하고(물론 차가 다니는 길은 안 되며 시멘트 포장길도 부득이한 경우만 이용하고), 처음 시작이 많이 힘든 오르막이 아닌 길을 선택합니다. 처음 시작부터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길은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산악인으로 알려진 제가 너무 힘든 산길을 오르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행히도 악양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능선은 중간중간에 임도(소방도로)가 있어서 능선까지는 차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산행에 초보들이 많은 우리에게 맞춤인 산길들이 펼쳐진 능선까지 편안히 자동차를 타고 해발 1,000m까지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서면 운 좋은 날에는 지리산의 주능선인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의 그 수려하고 장엄한 능선을 한눈에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발 아래로 보이는 아름답고도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과 남해 바다의 섬들은 손을 벌리면 건져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어느 날은 삼천포와 와룡산은 물론 광주의 무등산까지 볼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산봉우리에 오르면 동네 골목대장처럼 ‘저 봉우리는 어떤 봉우리, 저 산은 무슨 산’하며 일일이 설명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두 ‘어디? 어디?’ 하며 나의 손끝을 따라 눈길을 보내며 감탄합니다. 또 눈을 아래로 돌리면 저 너른 평사리 들판이 고스란히 한눈에 들어옵니다. 황금벌판의 가을, 초록의 여름, 봄에는 보리의 초록과 자운영의 연분홍이 조화를 이루며, 겨울의 빈 들판도 볼 만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멋있고 좋지만 산행에서 무엇보다 어느 정도 산길을 걸은 후 돌아온 점심시간은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각자 배낭에서 요술 주머니가 나와서 펼쳐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저마다 솜씨를 부려 모양을 내고, 정성을 들인 도시락은 어떤 때는 먹기 아까울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김밥은 기본이고, 찰밥·단호박 잡곡밥, 삶은 고구마, 직접 키운 채소, 된장국도 보온병에 담아서 가져옵니다. 가끔은 직접 담근 막걸리와 매실주가 나오기도 합니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 숲길걷기 반의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아무래도 점심시간인 것 같습니다.

산에서 무엇을 먹은들 맛이 없으리오만, 정말 좋은 먹을거리들을 싸오니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고 그날 하루 포식은 정해진 순서입니다. 그 모든 것이 지리산이 있어 가능한 것이고, 항상 지리산에 고마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글_ 남난희 《낮은 산이 낮다》 저자·사진_ 지리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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